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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양육비이행 더딘 이유 따로 있었다...위탁 의존하는 전담기관

여가부 산하 양육비이행원, 신청 82%는 위탁처리

인력 적고 담당자 교체 잦아 신청 5년 뒤 연락받기도

이행원 예산 30억원인데 위탁처리 비용 25억 달해

양육비이행법 강화로 순위 밀린 한부모 사각지대 놓일듯

시민단체 "인력 늘리고 공시송달로 소송 가능해져야"

지난해 5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해결총연합회 관계자가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양육비이행원에 지원 신청하려다가 접수 담당자가 여러번 변경되고 지쳐서 포기했었어요. 그러다가 얼마전 연락이 와서 다시 진행을 해보려는데 잘 될까요…”(한부모 A씨)

양육비이행 지원 전담 정부 조직인 양육비이행관리원(양육비이행원)에 접수되는 지원 신청 중 80% 이상이 위탁기관에 넘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육비이행률이 4년째 30%대에 머물고 있는데 이마저도 대부분 위탁기관이 해결하고 이행원은 사실상 상담 창구로 전락하고 있다. 인력 부족 등 구조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양육비이행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말까지 양육비 이행의무가 확정된 약 2만건 가운데 실제 이행된 건수는 7,218건으로 누적 이행률이 36.1%에 그쳤다. 2017년 32%, 2018년 32.3%, 2019년 35.6%에 이어 4년째 30%대에 머물러있다. 재산 파악을 거쳐 채권이 확보됐더라도 여전히 양육자 3명 중 2명은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자료제공=양육비이행관리원


양육비이행원은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에 따라 2015년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인 한국건강관리진흥원(한가원) 내에 만들어진 조직으로 독립 기관은 아니다. 양육자가 비양육자로부터 양육비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당사자 간 협의·소송·추심·제재조치 등을 지원한다. 소송 비용은 정부가 부담한다.

저조한 이행실적보다 심각한 문제는 전담기관이 직접 비양육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아내는 것보다 위탁기관이 처리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이행건수 7,218건 가운데 양육비이행원이 담당한 경우는 18.3%(1,323건)에 불과하고 81.7%(5,895건)는 대한법률구조공단·한국가정법률상담소·대한변호사협회 등 위탁기관이 담당했다. 이행원에 접수를 하더라도 결국은 위탁기관으로 넘어가고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리게 된다.

이처럼 위탁기관 의존도가 높은 이유는 양육비이행원이 한해 수천건씩 쏟아지는 지원서를 감당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행원에 접수된 신청 건수는 2018년 3,925건, 2019년 3,206건 등 연간 3,000~4,000건을 기록하고 있다. 양육비 이행 건수가 연 평균 1,200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보다 3배 많은 신청 접수가 해마다 이행원에 들어오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행원 내 양육비 이행 소송을 담당할 법률전문가는 10명 이하로 부족해 25억원을 들여 업무를 위탁기관에 넘기고 있다. 최근 이행원 업무 구조도 소송 지원, 추심, 감치 비중은 낮아지고 점차 한시적 양육비 지급, 비양육자와 자녀 간 면접교섭 지원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양육비 해결모임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경찰청장을 직무유기로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육비이행원의 담당자까지 자주 바뀌면서 한부모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양육비이행원 내 정규직·공무직 62명이 상담·소송·추심·감치와 각종 사무 업무를 맡는데 평균 임금이 준정부기관 350여개 중 최하위여서 변호사를 포함한 직원 이직률이 높다. 또 여성직원 비율이 70%에 육박하는 조직 특성상 육아휴직 등 휴직자가 자주 발생하고, 업무를 보조하는 수습 변호사와 청년 인턴들도 1년 미만 계약직이어서 한부모들은 담당자가 바뀌는 일을 자주 경험한다. 한부모 소통창구인 콜센터 직원들도 모두 계약직이다. 연락을 기다리다 지친 한부모들은 양육비 받기를 포기하거나 자신이 직접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률구조공단에 의뢰하는 일이 빈번하다. 한 한부모는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 커뮤니티를 통해 “이행원 접수 두달 만에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와 1시간동안 통화한 뒤 몇달동안 기다렸다”며 “그런데 연락이 없어 문의해보니 담당 변호사가 휴직을 신청해 다른 변호사로 바뀌었고 새로 온 변호사는 현재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푸념했다.

문제는 올해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 개정으로 지원 신청이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지만 양육비이행원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법 개정으로 법원의 감치명령을 받은 채무자가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올해 6월부터 운전면허 정지, 7월부터는 출국금지·형사 처벌이 가능해지자 벌써부터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하지만 상급기관인 여가부 예산이 최근 3년간 연 평균 18% 늘어난 것과 달리 정부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양육비이행원 예산은 30억원으로 3년째 동결되면서 인력 규모는 그대로다.

양육비이행관리원 담당자의 잦은 교체, 인력 부족 등을 지적한 국민청원 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이러한 상황에서 양육비이행법 개정으로 오히려 양육비 이행 기간이 더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양육비이행원에 양육비 이행 소송, 감치 소송 신청이 몰리면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신청자들은 소송기간이 2~3년 걸리던 일도 1년 이상 더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부모가 직접 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선임비용만 최소 330만원이 들어간다.

수년 전부터 인력·예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육비이행원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논의를 거쳐야 하고 분리할 경우 이행원이 속한 한가원의 기능이 건강가정지원센터 관리 등으로 대폭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또 영국·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양육비 전담기관이 양육비 의무를 결정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법원 중심으로 짜여져있기 때문에 이행원이 분리되더라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정부 관계자는 “새로운 공공기관을 하나 설립하는 일이기 때문에 쉬운 게 아니다"라며 “이행원을 분리해 법률 소송만 맡으면 기존 법률구조공단과 기능이 겹친다"고 설명했다.

양육비이행률을 높이고 이행 속도를 높이려면 담당 인력을 늘리고 감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무자 운전면허 정지, 형사처벌 등이 가능하려면 소송을 통해 법원의 감치 판결을 이끌어야 하는데 채무자가 위장전입하거나 주소를 부모 집으로 바꾸면 소장이 전달되지 않아 양육비 이행명령·감치 소송 진행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양육비이행원의 감치 집행률이 4%로 매우 저조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공개 웹사이트인 배드파더스의 구본창 대표는 “양육비이행원이 서울에만 있고 인력도 부족하다. 양육비 소송 관련 기관 규모를 10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감치 판결을 받지 못하면 운전면허 정지, 형사처벌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양육비이행법이 개정되도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며 “공시송달(우편 대신 홈페이지나 언론사 광고로 소장을 공개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로 소송이 진행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창영 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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