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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샤워실의 바보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샤워하기 전 적정한 물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다소 신중해야 한다. 조금 기다리면 딱 좋은 온도의 물이 나올 터인데 못 참고 손잡이를 반대로 돌렸다가는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운 물이 쏟아져 샤워실을 뛰쳐나오게 된다.

지난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이런 행동을 ‘샤워실의 바보’라고 하며 정부의 경제정책 역시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인에 대한 심층적 분석 없이 경제의 단면만을 보고 섣부르게 대증적(對症的)으로 하는 정부의 시장 개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현 정부는 스스로 샤워실의 바보임을 계속 자인해왔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며 집권 4년 동안 25번의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집값은 물론 땅값까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벼락치기 정책을 마구 쏟아내다가 급기야 국민적 분노가 대폭발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소득 주도 성장으로 경제성장을 유인할 수 있다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준비 안 된 주52시간제, 원칙도 없고 장기 전략도 없는 비정규직의 획일적 정규직화 등 과도한 노동 편향 정책을 쏟아냈다. 결국 나쁜 단기 일자리만 양산하고 실업률·취업률 등 대부분의 고용 지표 역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두고 바보 인증을 하려 한다. 최근 국민연금은 오는 2022년까지 전체 자산의 50%를 ESG 관련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금융위원회는 2025년부터 국내 ESG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1월 당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익공유제를 연착륙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을 ESG 평가에서 찾는다”며 정부에 연기금 투자와 공공 조달에 ESG 평가를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민주당은 협력이익공유제에 참여하는 기업에 대한 세제 감면 법안 발의와 함께 국민연금의 ESG 투자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의 이익공유제 참여를 압박하는 카드로 ESG를 쓴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ESG의 중요성이 커지니 우리 기업들을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보이지만 잘못짚어도 한참 잘못짚었다.

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하는 ESG는 기업 생태계 변화에 따라 기업과 투자자의 인식이 바뀌며 자발적으로 시작됐다. 아직 생물과 같이 움직이고 있다. 국내 기업 환경에 맞는 평가 기준도 정립되지 않았고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 기업, 대기업조차 역량 확보가 시급하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해 ESG 경영을 관치(官治) 평가하고 정부의 지원·투자에 반영하겠다고 한다면 기업은 정부 입맛에 맞는 기준 달성에만 집중하게 된다. 결국 기업·산업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평가를 위한 평가에 머물게 될 것이다. 정부의 개입으로 오히려 우리 기업들이 격변하는 생태계에서 도태될 우려가 커질 수 있다.

정부는 ‘ESG 경영을 하라’고 명령할 것이 아니다. 기업들이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책 방향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또 한 번 샤워실의 바보임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제발 관치 경제의 틀에서 벗어나 민간 자율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 민간 경제를 뒤에서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기를 촉구한다.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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