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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문화
[공감] 내 부모의 몸과 기억이 무너져갈 때




선택은 두 가지뿐이었다.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하거나 아니면 크게 심호흡 한번 하고 해야 할 일을 하거나. 우선 물을 빼냈다. 그다음 욕조를 씻어내고 엄마 몸을 헹궈주고 비누칠을 하고 다시 씻기고 엄마 손을 잡고 욕조에서 나왔다. 물기를 닦아주고, 잠옷으로 갈아 입혔다.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침대 위에 엄마를 눕히고, 불을 껐다. 엄마의 방문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전에 없던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안에 새로운 힘이 싹트는 걸 느꼈다. (사라 레빗 지음, ‘엉클어진 기억’, 2015년 우리나비 펴냄)

이 책의 부제목은 ‘알츠하이머와 엄마 그리고 나’이다. 그리고 위에 옮긴 장면은 엄마가 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주위에 낭자한 자신의 변을 두 눈으로 보고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본 딸의 반응이다. 이 책은 글과 그림으로 치매로 인해 느리게 붕괴되어가는 엄마의 시간을 그려낸 그래픽노블이다. 애틋하고 슬픈 감정만큼이나 생생하게 다가오는 건, 스스로 몸을 돌보지 못하게 된 엄마를 대신 돌보는 과정에서 딸이 감각하는 엄마의 몸에 대한 기록이다. 병든 엄마의 몸에선 입 냄새, 겨드랑이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기저귀를 채웠음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옷과 시트가 흠뻑 젖어 있다. 엄마의 몸에 난 털, 뻣뻣해진 몸, 숨소리, 방귀 냄새…… 엄마의 기억이 뒤엉키고 붕괴되고 나서야 엄마의 몸을 씻기고 마사지하고 돌보며 깨닫는다. 엄마는 그저 가족을 돌보는 한없이 너그러운 영혼이나 마음만이 아님을. 낡고 닳고 다치고 상처 나고 피 흘리는 ‘몸’이었음을.



이 책에는 엉클어진 기억 속에서 엄마가 하는 헛소리와 잠꼬대들마저 정성스럽게 기록해둔 칸들이 있다. 정신이 들 때면 울곤 하던 엄마는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아 있어. 그래도 괜찮아, 그치?” 지금 살아 있는 부모의 몸을 구석구석 보살피고 들여다보고 만지고 싶다, 더 늦기 전에.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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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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