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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 사건 2년 흘렀지만…'약물 의심 성범죄' 1,500건 달한다

'버닝썬 사건'으로 약물 성범죄 위험성 알려졌지만

12시간이면 배출되는 탓에 수사 어려운 것은 여전

지난해 국과수 감정만 1,500건…판매도 공공연해

"수사 역량·국민 인식·사법부 판단 모두 개선돼야"

‘준강간 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등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4월 15일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열린 불법촬영 동반 준강간 사건 엄정 수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019년 이른바 ‘버닝썬 사건’ 이후 각종 약물이 성범죄에 악용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지만 2년이 흐른 지금도 약물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약물이 신체에서 빠르게 배출되는 탓에 수사가 이뤄지더라도 약물 사용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난제 중의 난제다. 약물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의 수사 역량과 일반 국민의 대응 수준이 높아져야 하는 것은 물론 법원의 준강간(심신상실 상태에 있는 사람을 성폭행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 판단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준강간 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등 5개 여성단체는 지난 4월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많은 약물 의심 성폭력이 약물 검출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기소 처분되거나 법적 처벌을 피해 간다”고 규탄했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2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7월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중 주량보다 훨씬 적은 술을 먹고 정신을 잃은 후 불법 촬영을 당했다. 이후 신고를 했지만 A씨의 몸에서 약물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이 수사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최근 5년간 접수된 약물 사용 성범죄 관련 접수 건수. 2016년 1,047건, 2017년 1,235건, 2018년 1,434건, 2019년 1,884건, 2020년 1,474건으로 2019년을 제외하고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자료=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


약물 사용이 의심되는 성범죄 사건이 수사와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러한 사건은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CCTV 등의 증거가 없는 이상 약물 투약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핵심인데 피해자의 신체에서 약물이 검출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과수가 지난 2013년부터 최근까지 감정한 성범죄 관련 사건 중 피해자의 신체에서 GHB가 검출된 것은 단 2건에 불과했다. 무색·무취의 향정신성의약품인 GHB는 투약 시 15분 만에 정신이 혼미해지지만 12~24시간이면 체내에서 배출돼 대표적인 '데이트 강간 약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가운데 검출이 잘 되지 않는 약물의 특성을 악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성범죄 사건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국과수가 약물 사용 성범죄와 관련해 실시한 감정은 지난 2016년 1,047건에서 지난해 1,474건으로 증가했다. 버닝썬 사건이 대두됐던 2019년(1,884건)에 비해선 줄었지만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클럽 등 유흥시설 이용이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소세라 보기 어렵다. 인터넷에서 ‘강력 여성 작업제’ 등의 문구와 함께 GHB가 공공연히 불법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도 사태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약물 사용 성범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관계기관의 대응 역량은 물론 일반 시민의 대응력이 모두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의 변호사는 “성범죄 수사를 할 때 약물이 사용됐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수사관이 신속히 피해자에게 약물 검사를 권유해야 한다”며 “일반인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할 때도 약물 성범죄가 의심될 땐 빠르게 고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연합뉴스


권영세 의원은 "경찰청은 약물의 의심되는 준강간 성폭력 사건에는 신종 마약 검출을 위한 과학수사 기법을 도입하고, 관세청은 검색 장비 첨단화를 통해 해외에서 밀반입되는 신종 마약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며 "관계기관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국민들을 약물 성범죄로부터 예방,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도 성범죄 약물을 탐지할 수 있는 휴대용 진단 키트를 세 단계(일반인용·현장 출동 경찰관용·전문 수사관용)로 나눠 개발하는 사업을 지난해부터 진행 중이다.

약물 사용 성범죄에 주로 적용되는 혐의인 준강간의 성립 요건을 사법부가 보다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장다혜 형사정책연구원 기획팀장은 “GHB 같은 약물을 투약했을 때는 비틀거리며 자빠지거나 이상한 말을 하며 대꾸하는 모습들이 나타난다”며 “이러한 모습이 영상으로 남아도 재판부는 심신상실로 보지 않고 피해자가 완전히 정신을 잃었을 때만 준강간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약물 사용 성범죄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당시 심신상실 상태였느냐’인데 사법부가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너무 좁게 하면서 많은 강간 사건들을 강간이 아닌 것처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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