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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110년전 심은 무궁화는 抗日을 피웠다

■나무로 읽는 역사이야기-강릉 방동리 무궁화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강릉 박씨 삼가 박수량을 모신 재실 안에 있는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이다. 아욱과의 갈잎떨기나무 무궁화는 꽃을 강조한 이름이다. 무궁화 꽃은 거의 100일 동안 피고 진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무궁화 꽃의 특징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인식이 달랐다. 예컨대 중국에서는 무궁화 꽃의 이 같은 특징을 단명(短命)으로 이해했지만 우리나라는 무궁(無窮)으로 받아들였다. 칼 폰 린네가 붙인 무궁화의 학명(Hibiscus syriacus L)에는 원산지가 시리아로 표기됐지만 인도와 중국, 심지어 한국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산림청에서 70주년 광복절을 맞아 '나라꽃 무궁화 품종 도감'을 발간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세계에서 무궁화를 가장 사랑하는 국가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나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무궁화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은 대부분 나라꽃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 지자체나 학교에도 시화나 도화·교화가 있다. 아울러 상징 꽃과 함께 상징 나무를 가진 시도나 학교도 적지 않다. 이는 꽃을 나무와 상대말로 오해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나무의 상대말은 풀이고 풀과 나무를 식물이라고 부른다. 꽃은 풀과 나무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무궁화를 나라꽃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상징 나무다. 무궁화를 우리나라의 상징 나무로 삼았다면 나무에 대한 철학이 매우 중요하다. 그간 무궁화에 대한 철학은 단순히 피고 지는 꽃의 속성에서 변화성과 영원성을 강조했다. 이에 더해 한 가지 강조할 점은 무궁화와 태극기에 담긴 인문학적 해석이다. 그래야만 무궁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릴 수 있다.

무궁화의 ‘무궁(無窮)’은 태극기의 ‘태극(太極)’과 같은 의미다. 태극은 곧 ‘무극(無極)’을 뜻한다. 태극이 무극이라는 구절은 중국 북송 시대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 첫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궁’과 ‘극’은 같은 뜻이다. ‘태극도설’에서 언급한 무극과 태극은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기독교의 ‘신(God)’과 같은 의미다. 따라서 ‘무궁’과 ‘태극’은 세상을 주재하는 개념이다. 무궁화와 태극기의 이 같은 철학적 의미는 우리나라의 사상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는 성리학의 철학을 계승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화와 국기에 담긴 철학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국내의 무궁화 중 천연기념물은 강릉 방동리 무궁화(천연기념물 제520호)가 유일하다. 이곳의 무궁화는 강릉 박씨 삼가(三可) 박수량( 朴遂良·1475~1546)을 모신 재실 안 동쪽에 살고 있다. 이곳 무궁화는 홍단심계(紅丹心系)이고 나이는 110세 정도다. 강릉 동방리 무궁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이자 우리나라 무궁화의 정체성을 가장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품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 천연기념물과 관련해 꼭 짚어야 할 것은 일제강점기에 성리학자의 집안에서 심었다는 사실이다. 성리학자의 후손이 무궁화를 심은 데는 곧 일제에 항거하는 뜻이 담겨 있다. 이 같은 사례는 경북 안동 병산서원 뜰의 무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두 그루가 얽혀 있는 듯한 강릉 방동리 무궁화


강릉 동방리 무궁화는 7월경부터 피기 시작한다. 재실 주인에게 연락하지 않으면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밖에서 무궁화를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옆의 건물 옥상에서 무궁화의 전체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곳 무궁화의 연륜을 알려면 줄기를 봐야 한다. 천연기념물 무궁화의 줄기는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무궁화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무궁화 줄기를 보면 마치 두 그루가 얽혀 있는 듯한 자태다. 두 줄기는 콩과의 덩굴성 니무인 등 줄기처럼 꼬여 있다. 게다가 무궁화의 줄기는 동쪽으로 굽었다. 이는 무궁화 줄기가 대문과 가까워 그쪽으로 가지를 뻗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궁화를 심을 때 공간을 충분히 고려했다면 곧게 자랐을 것이다.

방동리 무궁화의 가치는 말라 죽은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연화리 무궁화(천연기념물 제521호)를 생각하면 보존 가치가 더욱 높다. 그래서 방동리 무궁화의 보존은 아주 중요하다. 천연기념물 나무의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는 태풍이다. 연화리 무궁화도 태풍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다행히 방동리 무궁화는 재실과 재실 담장 덕분에 태풍의 위협에서 안전한 편이다. 무궁화의 철학적 가치를 생각하면 방동리 무궁화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종종 벌어지고 있는 국화와 국가(國歌)에 대한 논쟁을 감안하면 무궁화에 대한 철학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국화를 둘러싼 구태의연한 논쟁은 천연기념물 무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강판권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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