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궈차오 열풍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궈차오는 중국을 뜻하는 ‘궈(國)’와 유행·트렌드를 뜻하는 ‘차오(潮)’의 합성어로 중국인들이 외국 브랜드 대신 자국 브랜드를 우선시하는 애국주의 소비 성향을 말한다.
단순히 중국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든 외국 기업들에 타격을 주려는 불매운동을 통한 자국 제품 구매뿐 아니라 일부 관광지에서는 중국 제품을 구입한 이들을 무료로 입장시키는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붓는 요인 중 하나는 극단적 민족주의인 국수주의 세례를 받고 자란 ‘N(Nationalism·민족주의)’ 세대의 성장이다. 이들이 소비의 중심 축으로 크면서 애국 소비 성향도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부는 애국 소비 바람
지난 7월 중국 스포츠 용품 기업인 훙싱스포츠는 중국의 동영상 플랫폼 ‘두인’을 통해 사흘 만에 1억 위안(약 179억 7,6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상반기 전체 매출 총액을 넘어선 액수다. 경쟁 업체인 안타와 리닝에 비해 제품 품질과 인지도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알려진 훙싱스포츠의 깜짝 실적에 대해 시장에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혜 당사자인 훙싱스포츠가 합리적인 소비를 해달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심지어 일부 중국 관광지에서는 훙싱스포츠 제품을 착용한 사람들을 무료 입장시키는 진풍경도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든 일은 훙싱스포츠가 허난성 홍수 피해 지원을 위해 5,000만 위안을 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발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분석 기사에서 “훙싱스포츠의 상승세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라면서도 “이러한 구매 열풍은 중국에서 민족주의 정서가 쇼핑에도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중국 대표 스포츠웨어 브랜드 안타의 선전도 눈에 띈다. 안타는 중국 업체로는 처음으로 중국 내 스포츠 브랜드 매출액 1위(올 1~7월)에 올랐다. 앞서 3월 H&M·나이키 등 서구 유통 업체들이 신장 지역의 강제 노동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뒤 중국에서 대대적인 불매운동에 직면했는데 이에 따른 반사이익을 본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4월까지 바이두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브랜드의 75%도 중국 브랜드였다. 5년 전에는 45%에 불과했다. 중국 제품 전반으로 궈차오 열풍이 번지고 있는 셈이다.
경제성장 누린 N세대, 소비 중심
궈차오 열풍을 이끄는 주역은 청년 국수주의자들이다. N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미중 경쟁 속 중국의 경제성장을 보면서 자란 세대다. 중화주의에 대한 자부심으로 국수주의 및 배타주의 성향이 강하다. 이들이 중국산 선호의 중심에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에서 궈차오는 새 트렌드가 아니다. 미국이 ‘바이 아메리카’를 통해 미국산을 키우는 것처럼 중국인의 애국 소비도 미중 갈등이 점점 커지던 2010년 무렵부터 본격화했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들이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제품의 질을 높이고 마케팅에 집중한 것이 이 같은 흐름을 강화했다.
문제는 궈차오에 정치적 색채가 강하게 배어 있다는 점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몇 년간 중국 제품의 품질 향상과 소비자의 행동 변화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중국과 많은 서방 국가들, 특히 미국과의 긴장이 일부 소비자에게 중국 제품을 구매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주위 눈치 보며 중국산 구매도
이러다 보니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궈차오에 동참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한때 나이키와 아디다스 팬이었던 중국인 대학생 A 씨는 닛케이에 “지금 같은 여론 환경에서 외국 제품을 구매하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며 “최근 들어 국내 제품을 검색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말했다.
궈차오 열풍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서구 기업들은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프라다는 최근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더욱 신경을 쓰기 위해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 전담 현지 팀을 꾸렸다. 버버리와 발렌시아가 등 일부 서구 유통 업체들은 중국 주요 지역의 축제 기간 한정판을 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은 외국 기업 입장에서 매우 까다로운 게 사실이다. 기업으로서는 신장이나 홍콩 문제 등 점점 증가하는 정치·사회적 금기 사항들을 주의 깊게 다뤄야 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젊은 중국 구매자의 입맛에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뺀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큰 점도 해외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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