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군 헌병대 군무이탈 체포조(Deserter Pursuit)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디피(D.P.)’가 화제다. 드라마 속 탈영병들은 조직의 부조리나 악습을 견디지 못해, 또는 가족의 생활고 같은 개인적으로 중요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군 담벼락을 넘는다. 이들을 추격해 제자리로 돌려놓는 이들이 ‘디피’이고, 조직은 그렇게 항상성을 유지한다. 작중 에피소드들의 사실성과는 별개로 보는 내내 조직이라는 체제가 형성하는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배경과 개성을 지닌 개인이라도 일단 조직에 소속되면 조직의 질서, 즉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명확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모인 조직, 그 안에 형성된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도 같은 ‘문화’의 힘은 매우 크다. 건강한 조직 문화를 갖춘 기업은 위기가 닥쳐도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특별한 통제 없이도 구성원이 조직의 이익을 위해 나아가게 만든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헤이그룹(Hay Group)의 분석에 따르면 기업 재무적 성과의 약 30%가 조직 분위기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이처럼 잘 갖춰진 조직 문화는 기업의 차별적 경쟁 우위가 될 수 있다.
군대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기업의 조직 문화도 오랫동안 위계와 질서에 기반해왔다. 과거 고도 성장기의 우리 기업들에 있어 수직적으로 잘 정렬돼 일사불란하고 신속한 조직 문화만큼 효율적인 방식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경영 방식에서 빛을 발했던 조직 문화가 지금 우리 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 속에서도 유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바야흐로 디지털 혁신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가속화시킨 디지털 대전환의 패러다임 속에서 게임의 룰이 바뀌고, 기업들은 적극적인 변화의 수용자가 되지 않고서는 생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조직 인력 구성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 불리는 ‘MZ세대(1980년 이후 출생자)’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다양성과 창의성이 비즈니스의 핵심 역량이 되고 있다. 일하는 방식이 다변화하고 비대면 수요가 확대되면서 재택근무·원격근무를 포함한 스마트워크가 생산성 향상의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적응력이 높은 조직 문화가 혁신의 동력이 된다.
변화에 능동적인 조직 문화가 성과를 창출해내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일례로 명품 브랜드 ‘구찌(Gucci)’는 2015년 젊은 직원들이 경영진을 자문하는 ‘리버스(reverse)멘토링 위원회’를 도입해 밀레니얼 세대의 생각을 조직의 전략과 문화에 녹아들게 만들었다. 그 결과 당시 오래된 이미지로 매출 하락을 거듭하던 회사의 실적이 크게 개선됐고, 2018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품 브랜드로 재도약할 수 있었다. 급격한 변화가 뉴노멀이 된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우리 기업들의 조직 문화도 과감한 변신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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