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해외 칼럼] 유럽이 보여준 일자리 교훈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열악한 임금 등 美 일자리 불량

팬데믹 터지자 대규모 퇴사 사태

친노동자 정책 유지해 온 유럽은

실직자 대부분 성공적 직장 복귀





미국인들은 외국의 경험을 배우는 데 서툴다. 우리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국가들에 대한 이 같은 편협성은 유해하다. 서유럽은 첨단 기술에 관한 한 우리와 동급이다. 북유럽의 노동 생산성은 우리와 거의 대등한 수준이다. 그러나 유럽의 정책과 제도는 우리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선 미국에 비해 유럽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실직자들의 성공적 직장 복귀를 이뤄냈다. 반면 미국은 이른바 ‘대퇴직(Great Resignation)’ 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상당수 근로자들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임금을 더는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미국의 취업 인구는 팬데믹 이전에 비해 400만 명이나 줄어들었다. 하지만 회사를 떠나는 근로자들의 비율은 새로운 고점을 찍었다. 근로자 퇴사율은 노동시장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 상태임을 시사하는 지표다. 실제로 일손을 찾는 고용주들이 늘어나면서 임금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아마도 유럽과의 비교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퇴사는 대체로 미국에 국한된 특이 현상이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에 비해 근로자들의 노동시장 복귀에 성공했다. 특히 프랑스 인력 시장은 팬데믹 이전보다 훨씬 활기차게 움직인다. 이런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이든 근로자들’이 부분적인 대답이다. 미국의 경우 55세 이상 근로자들 사이에서 노동시장 참여율이 날카로운 하향 곡선을 그린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으로 인한 레이오프가 끝난 뒤에도 이들 중 상당수가 일터로 돌아오지 않았다. 미국에 비해 노동자들의 은퇴 연령이 낮은 프랑스에서는 이런 현상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덴마크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는 나이든 노동자들의 비중이 미국보다 훨씬 높은데도 불구하고 대퇴사 사태를 피해갔다.

또 하나의 대답은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19 지원 방식 차이다. 미국은 기업들이 고용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면서도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에게 긴급 실업수당을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반면 유럽은 일하지 않는 근로자의 이름을 고용주가 직원 명부에서 삭제하지 않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 유지 정책에 의존했다.



미국의 접근 방식이 지닌 문제점은 이제 분명해졌다. 긴급 실업수당이 근로 의욕을 꺾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유럽의 접근 방식은 그들을 이전 일자리에 그대로 묶어둠으로써 신속한 직장 복귀를 이뤄냈다. 반면 미국의 정책은 과거 직장과 근로자들 간의 연결 고리를 상당 부분 끊어놓았고 결국 이로 인해 고용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추측성 가설은 이렇다. 유럽 노동자들이 미국식 대퇴사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미국인 근로자들만큼 자신의 일을 혐오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근로자들이 과거의 일자리로 복귀하기를 꺼리는 것은 팬데믹 동안의 오랜 휴직이 그들에게 인생의 중대 선택을 재고하게 하는 기회를 줬기 때문이라는 게 필자의 개인적 견해다. 아마도 이들 중 상당수는 열악한 근로 환경과 저임금에 찌든 함량 부족의 일자리로 굳이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지 모른다. 한마디로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으리라는 것이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물론 유럽은 근로자들의 천국이 아니다. 그러나 이곳의 일부 고단한 저임금 일자리가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조금 덜 끔찍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달러의 시급과 매년 6주의 유급휴가를 제공하는 덴마크 맥도날드다. 이는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에 해당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미국 직장들은 낮은 최저임금,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정기 유급휴가와 병가 및 육아휴가로 악명이 높다. 아마도 미국의 일자리가 지닌 불량성이 그토록 많은 근로자들의 직장 복귀를 꺼리게 만든 한 가지 요인일 것이다.

미국의 지식층, 특히 우파 지식인들은 이미 오래전에 양질의 일자리가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가설을 받아들였다. 높은 노동 경비가 고용을 축소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유럽의 상황은 이 같은 가설이 잘못됐음을 시사한다. 팬데믹 이전에도 많은 유럽 국가들은 일자리 창출에 좋은 성과를 냈다. 예컨대 프랑스의 핵심생산인구 취업률은 미국에 비해 일관되게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리고 이제 악몽 같은 직장 생활 교란의 여파 속에서 나온 친노동자 정책 역시 유럽 경제가 미국에 비해 훨씬 빠른 고용 회복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는 듯 보인다. 이래도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이 없다고 확신하는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