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정여울의 언어정담] 내려놓아야 마침내 보이는 것들

좋은 직장 다니며 동료들에 인정받고

아이 낳고 화목한 가정도 중요하지만

남에게 보여주기위한 일상돼서는 곤란

잠시 내려놨던 진짜 내꿈 들여다보길







우리는 힘들어하는 타인을 볼 때마다 ‘내려놓으라’고 이야기한다. 욕심을 내려놓고, 기대를 내려놓고, 더 나은 삶을 향한 과도한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내려놓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내려놓으라는 것은 노력도 행복도 포기하라는 말처럼 잔인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나조차도 ‘그만 내려놓으라’고 조언할 때가 있다. 나에게 자주 고민을 털어놓는 후배가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고, 좋은 직장도 갖고 싶고, 부모님에게 인정도 받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 그만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너에겐 남들이 부러워하는 재능과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데, 왜 너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느냐고. 넌 더 많이 자신을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후배를 토닥토닥 다독여주고 집에 돌아와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간신히 참고 있던 말은 이것이었다는 것을. “넌 너무 욕심이 많은 것 아니니. 그 모든 걸 다 가지고 사는 사람은 흔치 않아.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은 본 적이 없어. 하지만 모든 것을 가지지 않고도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은 많은걸.” 하지만 그녀에겐 내가 행복한 사람으로 보임을 알기에, 차마 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선배는 원하는 걸 가졌잖아요.” 이런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위로해야 할까. 내려놓으라는 말 말고, 더 슬기롭게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조언을 해줄 수는 없을까.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들어올려야 할까. 그런데 내려놓아야 마침내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하나씩 내려놓을 때마다 행복해졌다.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 학교나 사회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은 욕망, 좋은 직장을 가지고 싶은 열망을 내려놓았다. 나쁜 상황 때문에 포기한 적도 있고, 욕심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버거워 내려놓은 것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것들을 깨끗이 내려놓았는데도 아직 간절히 원하고 꿈꾸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사회적 인정보다는 ‘내 마음 깊은 곳의 나’가 기뻐하는 일들을 하고 싶어진 것이다. 더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고, 더 많은 시집을 읽고 싶고, 묵묵히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더 만나고 싶고,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장소를 향해 더 자주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남들처럼 살고 싶은 열망을 내려놓자,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또 하나의 나’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물욕이나 공명심을 내려놓으면 비로소 드러나는 더 크고 깊은 나 자신과의 만남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자기실현의 민얼굴이다.



이제야 후배에게 진정으로 해주었어야 할 말이 다시 떠올랐다. “결혼, 직장, 아이, 이런 것 말고 더 큰 것을 욕망해봐. 흰 종이 위에 네가 어린 시절 가장 되고 싶었던 모습을 그려봐. 시간을 잊고,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조차 잊고, 네가 완전히 몰두할 수 있는 그런 꿈이 분명히 있을 거야. 너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눈부시더라. 네가 나에게 선물한 그림, 아직도 내 방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걸려 있단다. 계속 그림을 그려봐.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네가 행복한 일을 시작해봐.” 돌이켜보니, 그녀의 온갖 고민과 스트레스를 들어주느라, 나조차도 그녀의 진짜 꿈과 재능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 시선에 물들지 않는 진짜 나를 찾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의 근육을 새로운 방향에서 쓰기 시작해야 한다. 어린 시절 그만두었던 피아노학원에 다시 다니기 시작하고, 재능이 없다고 포기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때로는 아무런 목적 없이 하루 종일 정처 없이 걷기도 해보자. 그래야 타인의 시선에 길들지 않는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술의 투명한 얼굴을 만나는 것은 또 하나의 나와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통로다. 그런 시간은 결코 아까운 시간이 아니다. 그동안 보살피지 못한 진짜 나 자신을 돌봐주는 모든 몸짓은 찬란하고 아름답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