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니. 얼마 전 한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야. 빛나는 갈색털을 가진 아름다운 강아지가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뛰어와서 안기는 일이 있었단다.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뭔가 엄청나게 귀여우면서도 과도하게 명랑한 생명체가 나를 향해 찬란하게 질주하는 거였어. 이상하게도 그 낯선 강아지가 무섭지 않았지. 너의 사랑스러운 강아지 J가 처음으로 달려오던 순간이 떠올랐던 거야. 나를 전혀 모르면서도 마치 ‘그냥 네가 너라서 좋다’는 듯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곧바로 돌진해서 나에게로 무작정 안겨주었던, 참으로 눈부신 강아지였지. 낯선 생명체가 그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너의 강아지 J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
너의 남편이 J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온 날 찍은 사진을 보고 나도 많이 울었어. 너의 슬픔에 감히 비할 수는 없지만, 나는 너희 부부의 슬픔과 내가 아는 가장 다정한 강아지 J를 잃은 슬픔을 함께 느끼며 멀리서 아파하고 있단다. 그렇게 지나치게 활발하고 과도하게 적극적이던 강아지가 마지막 몇 년 동안은 눈도 보이지 않고, 예전처럼 걸을 수도 없고, 힘없이 엎드려 있던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J의 어린 시절, 나는 강아지의 강력한 에너지에 압도당한 적이 있었어. 말티즈 J의 새하얗고 아담한 몸 때문에, 나는 J가 아주 연약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우리 J 산책 좀 시켜봐’라는 너의 부탁을 아주 가볍게 받아들였지. 그런데 웬걸. 나는 그토록 강력한 에너지에 압도당해 본 적이 없었어. 나는 아직 성견도 아닌 작은 말티즈에게 질질 끌려다녔지. 꼬맹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것이 아니라 힘센 늑대개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는 기분이었단다. 하지만 정말이지 행복한 추억이었어. 약동하는 생명체의 아무런 거리낌없이 힘찬 기운이 어떤 건지, 온몸으로 배운 시간이었지.
동물들은 왜 그토록 한없는 다정함으로 인간을 부끄럽게 하는 걸까. 오직 기쁨, 오직 슬픔, 오직 사랑. 동물들은 그 단순한 감정에 다른 복잡한 이물질을 섞지 않는 것 같아. 기쁠 때는 오직 기쁨만을 표현하고, 슬플 때는 오직 슬픔에 빠져버려. 지금의 나처럼 기쁠 때도 슬픈 일이 생각나서 기쁨이 희석되어버리고, 슬플 때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슬픔에 집중하지 못하는 복잡함이 아닌. 사랑할 때도 혹시 모를 이별을 걱정하느라 사랑에 집중하지 못하는 복잡함이 아닌. 오직 기쁨, 오직 슬픔, 오직 사랑. 그 순정한 감정표현에 나는 무너지곤 해. 강아지 J가 우리를 향해 힘차게 뛰어올 때, 낯선 강아지를 보고 신나서 뛰어갈 때, 자신에게 별 관심이 없는 존재에게조차도 변함없는 다정함을 아낌없이 표현할 때마다. 나는 잃어버린 사랑의 기술을 배우는 느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매일 기쁘고 신나는 그런 불가해한 사랑의 느낌을 배울 수 있었거든.
친구야. 네가 너의 강아지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까지 한 생명체를 사랑하기 어려울 것 같아’라는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선뜻 반려견을 입양하지 못했어. 세상 어디에서도 그렇게 사랑받고 그렇게 사랑하기는 어려울 것만 같아서. 강아지가 시름시름 앓을 때도, ‘그래도 우리 셋은 잘 지내’라고 말하며 빙그레 웃던 너의 남편과 함께, 너희 셋은 참으로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란다. 이제 셋이 아닌 둘이서 새롭게 시작하는 삶이 너무 허전하지 않기를. 너희가 무려 17년이나 함께 나누었던 ‘우리 셋은 잘 지내’라는 이름의 완벽한 공동체가, 더 크고 깊은 사랑으로 더 많은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삶의 기쁨과 멈출 수 없는 사랑을 마구마구 퍼뜨리기를. 친구야, 나에게 그토록 완벽한 사랑의 모범답안을 보여줘서 고마워. 너무 완벽해서 도저히 따라가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사랑한다면, 저들처럼’ 해야 함을 깨닫게 해주어서. 정말 고맙다. 그리고 많이, 아주 많이 보고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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