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완전한 희극도, 완전한 비극도 없는 한 편의 연극 같다고. 여기 희비극이 교차하는 무대 위에 두 남녀가 있다. 그리고 이들의 삶을 ‘전쟁의 폭력’과 ‘사랑의 위대함’, ‘눈부신 예술의 힘’으로 써내려가겠다는, ‘광대한 신(神)’을 자처하는 세 명의 광대들이 있다. 광대들이 불쑥불쑥 개입하며 뒤죽박죽 펼쳐내는 이야기는 하루하루 전쟁 같지만, 그 안에서는 사랑과 창조가 꽃을 피운다.
파괴의 전쟁터를 배경으로 하는 연극 ‘환상동화’는 세 광대가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액자식 구성의 작품이다. 전쟁 광대는 인간의 파괴 본능을 자극하는 전쟁을, 사랑 광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애절한 사랑을, 예술 광대는 영원불멸의 가치를 창조하는 예술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자기 주제만 고집하던 이들이 ‘모든 걸 다 담자’며 합의를 이뤄내면서 얼결에 작품이 시작된다. 작품 속 주인공은 전쟁 중 군에 징집됐다가 청력을 잃은 피아니스트 한스와 폭발로 시력을 잃은 춤 추는 여인 마리다. 두 사람은 서로의 귀와 눈이 되어 아름다운 선율을, 몸짓을, 그리고 사랑을 이어간다. 전쟁이란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사랑과 예술로 고난을 극복한다.
배우들의 합은 작품의 매력을 배로 빚어낸다. 특히 광대 역의 세 배우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내지만, 이내 웃음을 눈물로, 환희를 공포와 비극으로 바꾸며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무대의 공기를 순식간에 전환해 결이 다른 이야기로 침투하는 몰입력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극 중 예술 광대는 외친다. “파괴가 창작을 멈추지 않도록.” 팬데믹으로 많은 것을 잃고 포기해야 했던 2021년의 끝자락에 이 한편의 동화를 통해 또 한 번 기도한다. 창작, 사랑, 그리고 우리의 꿈 담긴 일상이 멈추지 않기를. 따뜻한 주제부터 음악·무용·마임·마술이 결합한 스토리까지 연말, 이 계절에 더 없이 어울리는 작품이다. 2022년 2월 12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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