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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수 없는 사고'도 책임지라니…법·해석 곳곳 모순 투성이

[처벌만능주의 중대재해법]

<하> 법 개정이 유일한 해법

국회 통과 1년만에 시행…준비 부족에 법 모호성 여전

처벌만 지나치게 강조해 '예방 위한 법' 본래 취지 퇴색

고의·중과실 없는 사고는 면책…위험업종은 구분 적용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17일 발족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석자들이 1차 회의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사진 제공=경사노위




중소기업중앙회가 내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 받는 50인 이상 사업장 32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 조사 결과를 지난 27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서 무엇보다 정부의 산재 예방 지원 사업을 활용하지 않은 기업 202곳이 밝힌 이유가 눈길을 끈다. 기업 59.4%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그동안 사고가 없었던 기업 입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처벌한다는 법을 내 일처럼 여기고 적극적으로 준비할 수 있겠는가”라며 “법에서 요구한 안전관리체계를 만들면 정말 사망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처벌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지난 1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재석 266인, 찬성 164인, 반대 44인, 기권 58인으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가결됐다. /연합뉴스


중소기업 관계자의 설명처럼 중대재해법은 법 자체도 그렇지만 해석도 곳곳이 모순투성이다. 중대재해법은 법에서 요구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할 경우 중대재해가 일어나도 사업주를 처벌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명확히 해달라는 경영계의 요구에 “현장 위험을 가장 잘 아는 대표가 안다”고 답한다. 중대재해법이 현장에 혼선 없이 안착하기 위해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막을 수 없는 사고’까지 사업주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는 중대재해법의 목표인 기업 스스로의 안전체계 확립을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경제가 인크루트에 의뢰한 설문 조사(499개 기업)와 중기중앙회(322개), 한국경영자총협회(314개) 등 경제 단체가 최근까지 실시한 기업 설문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 개선 방안은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 처벌 면책 규정을 법에 반영하는 것이다. 서울경제 설문에서는 29.2%(2위), 중기중앙회 설문에서는 74.5%, 경총 설문에서는 74.2%가 면책 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서울경제 설문에서는 면책 규정과 함께 대안으로 꼽히는 업종별 구분 적용(35.7%)이 1위를 기록했다. 건설업이나 철강·조선업 등 그동안 중대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난 업종에 대한 구분 적용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올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년 만에 법 시행을 준비하기에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점과 시행령, 법 해설서에서도 경영계 우려를 낮추지 못한 모호한 규정이 꼽힌다. 여기에 기업이 근본적으로 사고를 막을 수 있느냐는 논쟁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사람이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는 원시적 불능이라고 본다”며 “중소기업·대기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안전보건관리체계)가 다 다를 텐데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검찰 수사에 자의적인 판단이 반영되지 않겠는가”라고 우려했다.

고용부는 기업이 중대재해법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한다. 고용부의 내년 산재 예방 예산은 올해보다 11.8% 증가한 1조 1,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다. 2년 새 두 배 넘게 뛰었다. 산재 예방 시설 융자(3,563억 원), 위험 기계 교체(3,271억 원), 안전 시설 개선(1,197억 원) 등에 사용한다. 내년부터는 2,000곳의 안전보건관리체계 컨설팅 지원도 이뤄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지원 예산을 더 늘리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사 관계 회복에 더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업주가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업자뿐만 아니라 근로자 스스로 안전사고를 예방하려는 자세 등이 정교하게 맞물린 두 바퀴처럼 함께 굴러가야 하기 때문이다.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등을 이유로 중대재해법이 원안보다 후퇴했다고 주장하는 노동계를 설득해야 하는 이유다. 중대재해법에 대한 온도 차이는 국회도 마찬가지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22일 중대재해법 토론회에서 “중요한 내용이 빠지면서 누더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에 따른 처벌을 강화하겠다”며 개정안을 예고했다. 반면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본래 법 목적과 달리 예방이 아니라 처벌을 위한 법이라는 메시지가 너무 많이 확산됐다”며 “시행 후 몇 개월 내 면책 조항이 담긴 개정안을 발의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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