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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리포트]8년전 놓친 '무관세동맹'…두번 실수는 안된다

판 커지는 CPTPP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수출시장 확대·첨단 통상규범 도입

美中 갈등 속 공급망 안전판도 확보

농업·기초산업 등 일부 타격 있지만

CPTPP 가입, 실보다 득이 훨씬 커

中 가입 신청으로 상황 복잡하지만

韓 불참하면 국제통상 무대서 고립

영향력 막대한 日 반대 극복이 관건

하루빨리 한일관계 정상화시켜야





우리 정부는 지난 2013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에 관심을 표명한 지 8년이 지난 시점에 가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2017년 초 미국이 탈퇴한 후 TPP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가입 결정에 무려 8년이 걸린 것은 CPTPP 가입이 ‘양날의 검’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CPTPP 가입으로 수출 시장을 확대할 수 있고 새로운 첨단 통상 규범을 도입해 국내 비즈니스 환경을 개선할 수도 있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첨단 디지털 통상 규범은 데이터 기반 플랫폼 경제 활성화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메가 자유무역협정(FTA) 효과를 높이고 회원국 간 공급망을 원활화하기 위해 CPTPP 회원국들은 누적 원산지 기준을 도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미중 디커플링, 자연재해 등에 따른 공급망 차질로 생산 라인이 올스톱되는 사태가 빈번해짐에 따라 공급망 안정화는 각국의 최대 관심 사항이 되고 있다. 누적 원산지 외에 CPTPP에 포함된 무역 자유화와 무역 원활화를 위한 각종 특혜 조치는 회원국 간의 공급망을 탄탄하게 구축하는 효과를 내게 된다. 미중 패권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세계무역기구(WTO) 기능이 마비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CPTPP 가입은 의미가 크다. 더구나 일본이 공급망 확충 파트너로 선택한 대만이 CPTPP에 가입할 경우 우리나라의 불참 비용은 더 커지게 될 것이다.

CPTPP 가입은 ‘포스트 팩토리 아시아’ 대책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중국은 팩토리 아시아의 핵심 축이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집권 기간에 확립된 글로벌 무역 질서에서의 중국 배제 정책은 조 바이든 대통령 정부에서 더 정교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디커플링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수출 통제 제도를 적용해 화웨이 같은 중국 첨단 기업들의 해외 거래를 묶었고 기술 분야에 대한 중국의 대미 투자를 철저하게 막고 있다. 이로써 중국의 팩토리 아시아 지위는 약화되고 일본은 CPTPP를 활용해 중국이 빠진 공간을 차지하는 전략에 돌입했다. 일본은 기존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와의 공급망 체계를 바탕으로 대만을 CPTPP에 가입시켜 팩토리 아시아를 주도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나라가 CPTPP 밖에 있다면 디커플링과 탈중국으로 취약해진 공급망을 확충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팩토리 아시아에서의 위상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시아 지역 15개국 간 FTA인 역내경제동반자협정(RCEP)과 비교해 CPTPP의 개방 수준이 높은 점은 수출 산업에 긍정적이나 수입품과 경쟁하는 산업에는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8년 전과 마찬가지로 현재도 CPTPP 가입을 우려하는 산업은 자동차 같은 일부 제조업과 농축수산업이다. 자동차는 사실상 한일 양국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대표적 산업이다. 자동차에 대해 일본은 무관세를 적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8%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국내 업계의 부담이 큰 상황이다.

기초 산업의 반발도 심각하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은 한미 FTA에서 우리나라가 미국에 제공한 수준의 농업 분야 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쌀 시장 추가 개방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도 농업계를 힘들게 한다. 우리나라는 위생검역(SPS) 규정으로 축산물과 과실류 등의 개방을 최소화해왔지만 CPTPP에 가입하면 현재의 우리나라 SPS 규정 적용이 어려워지게 된다. 수입국보다는 수출국에 유리한 SPS 규정을 대거 도입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주도해 만든 CPTPP 신규 가입 지침에 따르면 기존 회원국과의 양자 간 협의(consultation)를 통해 일종의 입장료를 약속하는 형식으로 가입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즉 ‘주고받는’ 형식으로 협정의 범위와 시장 개방 내용을 결정하는 일반적 FTA 협상과 달리 CPTPP에서는 협정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고 덤으로 더 얹어주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 회원국은 우리나라의 취약 산업 개방을 가입료로 요구할 것이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CPTPP 가입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일본이 될 것이다. 최악의 한일 관계로 기본적인 인적 교류와 경제협력이 차단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통상 당국은 회원국과 수차례 협의했다고 하지만 일본과의 협의에 대해서는 말을 흐린다. 그런데 7월 중국이 일본과의 협의 없이 가입 신청서를 CPTPP 사무국을 담당하고 있는 뉴질랜드 정부에 제출함으로써 국내 통상 당국도 전 회원국의 협의 없이 가입 신청이 가능한 것으로 가입 지침을 해석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중국의 CPTPP 가입 신청은 전략적 목적이 작용한 것이며 가입이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에 대해 일본은 중립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한일 관계가 정상적이라면 벌써 가입 결정을 환영하는 외무성 보도 자료가 나왔을 것이다. 정치·사회적 이유로 최악의 한일 관계가 지속되는 와중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가입을 반길 리는 만무하다. 지난 30여 년간 일본 경제는 침체 국면이 많았던 반면 우리나라는 대체로 성장세를 지속해 양국 간 경제력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우리나라를 견제하는 일본의 심리를 읽어야 한다.



더구나 2019년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직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포토레지스트 등 네 가지 핵심 물질에 대한 수출 규제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백색 리스크 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발동해 일본은 우리의 공급망 혼선을 야기하려 한 바 있다. 아태 지역 최대 무역협정인 CPTPP에 가입하면 공급망 개선에 기여하게 되는데 수출 규제까지 단행한 일본의 계산은 뻔할 것이다. 종합하면, 현 상황으로 보면 일본은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일본 못지 않게 멕시코의 반대를 극복하는 것도 엄청난 과제가 될 수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멕시코는 우리나라가 추구한 FTA 대상국이었다. 북미 시장 진출 교두보로서의 중요성이 커진 멕시코는 우리나라와의 양자 FTA 논의에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해왔고 우리의 CPTPP 가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개최된 한·멕시코 수교 6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멕시코 산업계는 우리 기업의 현지 투자를 요청하면서도 FTA 체결은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재의 한일 관계에서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가입을 저지하려 할 것이다. 11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CPTPP는 다수결 결정이 아니라 전 회원국이 동의해야 가입이 가능하다. CPTPP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은 다른 국가보다 결코 약하지 않다. CPTPP 의장국이 올해 일본에서 내년에 싱가포르로 넘어간다고 해서 일본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CPTPP 가입을 떠나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국가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은 대외 정책의 기본이다. 우리나라에 일본은 산업 전반과 분야별 공급망이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국가 중 하나이며 미중 패권 다툼이 디커플링과 신냉전 체제로 악화하는 현 상황에서 한일 관계는 기존 한미일 안보 체계와도 직결돼 있다. 하루빨리 정치공학적 계산에서 벗어나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늦었지만 내년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CPTPP 가입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나 새 정부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CPTPP 가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가 가입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코로나19 기저 효과로 올해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할 수 있겠지만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글로벌 통상 환경으로 내년 수출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마땅한 정책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수출 시장 확보 및 공급망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CPTPP 가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정인교 교수는…

우리나라 FTA 정책의 산증인으로 그동안 정책 연구 및 공식 협상에 널리 참여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 국회 입법자문위원, 국제통상학회와 한국협상학회 회장, 외교통상부·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 등 정부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통상교섭자문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인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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