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정부가 탄소 중립 이행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포한 해다.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 인식이 확산되면서 ‘글로벌 탈탄소화’라는 거대한 변혁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우리나라도 대열에 합류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고 지난해 10월 탄소 중립 시나리오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을 확정했다. 탄소 중립은 선택지가 아니라 미래 생존을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과제가 됐다.
지난해 말 한국동서발전 호남화력이 48년간의 전력 생산 소임을 다하고 퇴역했다. 1973년부터 국내 최대 중화학 산업단지인 여수국가산단에 전력을 제공했던 발전소로 그 빈자리에는 친환경 발전 설비가 들어설 예정이다. 퇴역식 현장에는 아쉬움과 기대의 시선이 교차했다. 직원 중에는 입사 때부터 함께한 동지를 떠나보내는 기분이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이도 있었다. 대한민국 산업 역사의 한 장을 마감하는 의미가 있어 감동스럽기도 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변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산업의 기존 틀이 유지되는 한 우리가 꿈꾸는 탄소 중립 사회는 요원하다. 호남화력이 퇴역을 고했듯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경제 성장을 일궜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아쉬움을 떨치고 탄소 중립의 큰 걸음을 뗄 때다.
탄소 중립이라는 과제는 주어졌지만 정해진 답은 없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 생각의 꼬리가 이어지도록 하면서 답이 될 수 있는 선택지를 획기적으로 늘려내야 한다. 건물 외벽이나 도로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좁은 국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농사와 전기 생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을 확대하면 어떨까. 에너지 소비가 많은 기업·대학·산업단지 등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 전기 요금을 절감하면 탄소 배출도 줄이고 이익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모두 한국동서발전이 질문에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혁신 실험의 내용들이다.
한국동서발전은 가보지 않았던 길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했다. 탄소 중립 사회라는 미래를 바라보며 ‘친환경 에너지 전환 선도 기업’으로서 비전을 새로 정립했다. 신재생·신사업을 강화하는 조직 개편을 마무리하고 에너지 전환 예산을 두 배 이상 늘리는 등 혁신을 위한 골격을 세웠다. 직급을 막론하고 머리를 맞대며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있다.
“진보란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며, 마음을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남긴 말이다. 탄소 중립 사회에 불을 밝히는 여정은 불확실성이 큰 만큼 짊어져야 할 부담도 많고 인식 전환과 기술 발전, 관련 제도 정비도 전제돼야 한다. 무엇보다 모두가 서로의 짐을 조금씩 나눠질 수 있어야 한다.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 새해를 맞아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변화에 떠밀리지 않고 두려움 없이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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