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신용 평가사인 무디스와 피치가 러시아의 신용 등급을 정크(투기) 등급으로 6계단씩 강등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디폴트(채무 불이행) 임박 상태로 등급을 8계단 낮추는 한편 러시아의 외환 보유액이 반 토막으로 줄었다고 추정했다. JP모건은 러시아 성장률이 2분기 -35%로 추락하고 연간으로도 -7%까지 수직 낙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등 각종 지수들은 러시아를 편입 대상에서 퇴출하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러시아는 국가 부도 위기의 벼랑에 몰렸다. 디폴트가 현실화하면 글로벌 경제는 훨씬 큰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해외은행들의 러시아 기업 대출액은 1210억 달러이고 외국인이 보유한 러시아 국채는 지난해 3월 기준 412억 달러에 이른다. 채무 상환 불가를 선언할 경우 러시아 채권에 투자한 금융회사들은 유동성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러시아와 연결 고리가 많은 유럽 금융회사들이 타격을 받게 된다. 채권을 보유한 대형 금융회사 한 곳이라도 디폴트에 처하면 리먼브러더스 사태에 버금가는 위기에 몰릴 수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세계 금융 시장을 초토화했는데 러시아를 고리로 유사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 속에서 최고 수준의 각국 부채가 긴축과 함께 악순환을 일으키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순식간에 교란될 수밖에 없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금융 시장 경색과 실물 부문 쇼크를 동시에 견디고 대비해야 하는 중차대한 상황에 처해 있다. 실물은 아직 충격을 흡수하고 있지만 금융 시장에서는 러시아 상장지수펀드(ETF)가 하한가로 추락하고 상당수 주가연계증권(ELS)이 원금 손실 위험에 놓여 있다. 정부는 긴축과 러시아 사태가 일으킬 ‘도미노 디폴트’를 가정하고 국내 금융회사의 유동성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곧바로 들어가야 한다. 경제주체들이 ‘신용의 겨울’이 몰고 올 ‘돈맥 경화’를 제대로 대비하지 않는다면 멀쩡한 기업까지 흑자 부도를 당하는 등 최악의 국면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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