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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수가 실패한 한은 개혁, 이창용은 할 수 있을까 [조지원의 BOK리포트]

보수적 분위기에 수재들의 무덤 된 한은

개혁 밀어붙인 김중수 떠나자 원상복귀

8년 만에 재등장한 외부 총재에 기대감

직원 개성 인정하고 점진적 변화 유도해야

취임식 참석하는 이창용 한은 신임 총재 (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2.4.21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끝)




8년 만에 등장한 외부 출신 총재에 한국은행이 들썩거리고 있다. 이미 ‘워커홀릭’으로 소문이 자자한 이창용 한은 신임 총재가 취임 전부터 중앙은행 역할 확대 등 각종 주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21일 취임사에선 자신이 근무했던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문성을 언급하며 한은이 ‘재정정책과 구조개혁’ 문제도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 총재는 “연구 성과를 책상 서랍 안에만 넣어 두면 안 된다”, “우리 경험과 연구 성과를 해외와 공유해야 한다”며 ‘국내 최고 싱크탱크’를 강조했다.

한은 내부에서는 의욕 넘치는 신임 총재에 대한 부담만큼 거는 기대도 크다. 이 총재가 지명되기 전부터 직원들이 먼저 외부 출신 총재를 원할 정도로 내부 출신 총재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전임 총재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급여로 대표되지만 폐쇄적이고 경직적인 사내 문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새 총재가 등장한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조직을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마저 감지된다.

한은 조직 문화는 실제로 심각한 수준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지난해 한은 조직 문화를 진단해 발표한 결과 ‘조직 건강도’ 평점은 38점으로 글로벌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조직에서 의견을 밝히고 나면 불안하고 걱정돼 잠을 못 자는 수준이다”,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등 충격적인 발언이 쏟아졌다. 국내 최고 두뇌들이 모여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곳이 됐다. 직원들 스스로가 한은을 ‘수재들의 무덤’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가 2014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이호재 기자.


한은의 보수적 조직 문화가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닌 만큼 조직 개혁을 외친 총재 역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특히 이주열 전 총재 이전 임기를 보냈던 김중수 전 총재는 누구보다 한은 개혁에 열중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인 김 전 총재는 취임과 함께 한은의 뿌리 깊은 ‘순혈주의’와 ‘연공서열’을 공격했다. 젊은 직원을 발탁하고 외부 영입을 추진하는 등 경직적인 문화를 깨뜨리는 데 앞장섰다. ‘글로벌 한국은행’을 강조하며 세계 각국에 직원을 파견하는 등 성과도 냈다.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각종 파격적인 정책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김 전 총재가 떠나자마자 한은은 원상태로 복귀됐다. 후임 이주열 전 총재는 김 전 총재가 추진했던 급격한 변화가 오히려 조직을 망친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격 인사는 직원 간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이 전 총재는 취임 후 첫 정기 인사를 단행한 뒤 “64년 한은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직원 간 불신과 갈등, 그에 따른 논쟁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까지 할 정도였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발언 등으로 직원 신망도 얻지 못했다. 김 전 총재는 직전 이력이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라는 것부터 내부 반발을 샀다. 여기에 대고 “물가와 성장 중 최종 선택은 대통령이 하는 것으로 (한은이)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라고 말해 한은이 민감해하는 독립성 문제를 건드렸다. 임기 도중 “한은 직원들이 실력이 없기 때문에 한은이 미시감독 권한을 가지면 망한다”고 한 발언이 전해지면서 직원 폄하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국은행 앞 / 연합뉴스


한은 직원들은 김 전 총재의 개혁 의지는 인정하면서도 방식이 잘못돼 실패했다고 본다. 김 전 총재가 다양하게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한은 직원에 강요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전 총재 성향 자체가 벼랑 끝에 매달린 직원에 손을 내밀키는커녕 더욱 극한으로 몰아붙여 살아남는 직원들만 데리고 가겠다는 식인데 이 자체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은에서 야근이 많아졌다는 푸념이 나온다고 하자 “야근은 축복”이라고 해 구설에 오른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신임 이 총재는 김 전 총재와 마찬가지로 한은 외부 출신에 ‘워커홀릭’으로 유명하지만 한은 직원들이 갖는 기대는 사뭇 다르다. 취임사를 뜯어 보면 ‘할 것입니다’라고 한 전임 총재들과 달리 ‘합시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며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 한은 직원은 “새 총재는 개혁을 강조하면서도 강행하지 않고 속도를 조절하려는 모습도 보인다”고 했다.



다만 김 전 총재 사례에서 보았듯 한은 조직 문화는 총재 한 사람만 의욕을 갖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우려도 있다. ‘혼자 튀려고 보고서 썼다’라고 손가락질하는 조직 문화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총재가 원하듯 직원 개개인이 전문성을 인정받고 경제 현안 전반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려면 직원들이 ‘이번엔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을 신호가 필요하다.

이 총재는 김 전 총재와 달리 내부 소통에 더욱 더 신경 써달라는 요청도 나온다. 한은에는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영영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직원이 많다. 이들을 찾아 내는 것도 이 총재의 주요 과제다. 한 한은 고위급 인사는 “다른 사람이 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조직에서 ‘튀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튀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닌 실력을 갖추고 눈에 띄는 직원들이 인정받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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