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지켜본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굉음과 섬광을 내며 성공적으로 발사되는 장면을 저는 휴가 기간 중에 봤습니다.”
누리호 개발을 총괄했던 고정환(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최근 대전에 있는 항우연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주위에 있던 연구진이 환호성을 지를 때도 그는 온 신경을 지도 위 움직이는 점 하나에 집중했다. 특히 지난 1차 실패의 원인이었던 3단 엔진 연소 단계에서는 예민함이 극에 달했다. 한 번 실패했던 곳에서 또 고배를 마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발사체가 완벽하게 성능검증위성을 목표 궤도에 올려놓은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는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 조바심은 최근 휴가를 다녀온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유로운 시간을 고대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고 본부장은 “늘 시간에 쫓겨 뭘 하던 버릇이 있어서 자다가도 괜히 일찍 깨 무슨 일이 있나 생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그에게는 한국의 우주개발 사업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중요한 임무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는 “12월까지 누리호 3호기 조립 완성으로 한국형 발사체 개발 사업을 마무리한다”며 “기존 사업과의 연속성을 고려해 고도화 사업도 당분간은 직접 총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도화 사업 이후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은 한국 우주산업이 밟아가야 할 ‘뉴스페이스 시대’와 맞물린 중요한 과제다. 공공에서 결실을 본 우주항공 기술의 성과를 발판 삼아 민간이 무대 한가운데로 들어온다. 고 본부장은 이때가 되면 기술과 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기에 정부에서 먼저 시작한다. 이때는 사업의 지상 목표가 ‘되게 하는 것’에 맞춰진다”며 “이후 기술적인 기반이 축적되면 민간 영역이 공공에서 한 것보다는 훨씬 도전적인 방식으로 여러 시도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시대를 궤도에 올리기에는 우리 기술 수준이 아직 걸음마 단계며 공공에서 할 일이 여전히 많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이번 성공으로 겨우 각 부품을 조달할 수 있는 기업을 한 곳 정도씩 만들어놓은 셈”이라며 “미국을 제외하면 민간 시대를 활짝 열었다고 볼 곳은 없다”고 말했다.
고 본부장은 이번 성과의 원동력을 연구진 개개인의 역량과 성실함에 돌렸다. 그는 “한국 연구진의 역량이 뛰어나고 또 무슨 일이 생기면 만사 제쳐두고 밤을 새우면서까지 해내는 의지가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인력 수급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았다. 누리호 다음 시대를 열기 위해서 개인의 퍼포먼스에만 기댈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보여준 기대와 성원까지 생각하면 인력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깊어진다. 고 본부장은 “소프트웨어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선호도가 줄어들면서 앞으로도 인력 문제가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불거진 항우연 연구진 처우 이슈에 대해서도 “연구진에 대한 대우가 그렇게 좋다고는 말을 못 할 것 같다. 채용 모집 공고를 올리면 생각보다 지원을 받기 어렵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산업 특성에 맞게 예산 편성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업별로 편성되는 예산집행이 대표적이다. 그는 “예산이 사업마다 덩어리져 나오다 보니 사업 사이에 연구가 끊어지기 일쑤”라며 “다음 사업이 미리 착수가 안 된 경우 예타 등 필요한 과정을 밟으면 1~2년은 훌쩍 가버린다”고 말했다. 고 본부장은 또 “이런 거버넌스하에서는 특정 분야의 핵심 기술을 고도화하려 해도 특정 기술 자체에 대해 예산 지원이 안 되다 보니 다른 사업에 억지로 집어넣어야 한다”며 “결국 효율성도 떨어지고 신속하게 진행하기도 어려워진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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