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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관치 그리고 포퓰리즘

◆김현수 금융부장

금리인상기 이자감면 등 대책 잇따라

취약차주 금융지원 필요성 인정하나

타이밍 안맞는 관치는 시장개입 불과

정교함 떨어지면 포퓰리즘 전락 위험





관치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다. 2004년 카드 대란 당시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말은 정부 시장 개입의 정당성을 대변했다. 7년 뒤 그는 금융위원장으로 저축은행 부실을 정리하며 관치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했다. “관이 아무 때나 치하면 천박한 관치다. 시장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을 때만 치한다. 그리고 일단 관이 나섰으면 확실한 해결사가 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행보가 참 요란했다. 업권별 대표들을 만나고 금융지주 회장들을 비공식으로 만나며 이 원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매서웠다. ‘이자 장사’ ‘은행의 공적 기능’이라는 말은 검찰 출신 첫 금감원장을 대하는 금융권으로서는 과거 금감원장과는 다른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금리 인상기 금융 당국의 수장이 금융사에 협조를 구하는 당연한 수순일 뿐 관치는 아니라는 반박도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말은 부드럽지만 강했다. 14일 정부의 취약 계층 금융 지원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정부 대책에서 빠진 부분은 금융회사가 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9월 소상공인 대출 상환 유예 조치를 종료하면서 ‘주거래 금융기관 책임 관리’라는 모호한 말로 은행에 대출 연장의 책임을 떠넘겼다.

금리 인상기 금융의 역할이라고 하지만 받아들이는 은행의 입장에서는 관치일 뿐이다. 은행들은 후속 조치 마련에 분주하다. 형평성 논란이 일고 은행들의 자율적인 판단이 무시됐지만 다중 채무자 등 정부 대책의 사각지대를 책임지려는 모습이다. 관치든 아니든 은행의 취약 차주에 대한 선제적인 이자 감면 등은 금융 시스템 불안 위험을 줄여 미래 손실을 줄이는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위기 상황을 해결하려는 관치가 정치적인 포퓰리즘으로 이어지려는 분위기는 불안하다. 금융 당국이 폐업 등으로 빚을 갚기 힘든 자영업자 채무를 최대 90% 탕감하고 ‘빚투’로 손실을 본 청년의 이자를 깎아주는 조치는 아무리 봐도 코로나 이후 빚잔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당장 빚에 허덕이는 소상공인과 청년층의 구제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구제의 방법이 문제다.



정책 대상 지원 대상인 자영업자·소상공인 채무 660조 원(부동산임대업 제외) 중 500조 원 정도는 정상 채무로 분류했다. 나머지 대출에 대해서는 은행과 새출발기금이 부실을 흡수해야 한다. 새출발기금 재원이 30조 원으로 한정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은행이 130조 원을 흡수해야 한다.

형평성 문제는 두고두고 이번 대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특히 청년들에게 ‘빚은 버티면 해결된다’는 모럴해저드를 심어줄 경우 일해서 부채를 갚는 정상적인 방법이 무시될 수밖에 없다. 뒤늦게 김 위원장은 이번 대책이 청년 빚투족의 원금 탕감이 아니라고 설명을 했지만 빚이 두려워 ‘벼락거지’로 전락한 서민들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암호화폐 투자로 돈을 날린 청년에게 빚잔치를 해주기보다 일을 통해 빚 갚을 방법을 찾도록 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 앞서 취약 차주에 대한 정부의 금융 지원에는 동의한다. 중요한 것은 관치의 타이밍과 정교함이다.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시장 개입일 뿐이다. 정교함이 떨어진다면 포퓰리즘으로 전락한다. 금융을 정부 정책 수단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금융정책은 이념과 정치 논리보다 얻을 것과 잃을 것을 구체적으로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김석동 전 위원장의 말처럼 관이 나섰다면 확실하게 해결해야 한다.

경제 위기의 초입에 서 있다고 한다. 갈 길이 멀다. 보다 세밀하고 구체적인 대책으로 대응해야 한다. 지지율 하락 등 급한 불을 잡기 위해 내놓는 정책이 돼서는 안 된다. 툭 던져 놓고 쏟아지는 비판에 설명하고 수정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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