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KDI는 경기 둔화에 대비해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조언도 함께 내놓았다.
KDI는 10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22년 하반기 경제 전망’을 발표했다.
KDI는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이 1.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5월 상반기 경제 전망 때 내놓은 전망치인 2.3%보다 0.5%포인트나 내려잡은 것이다. 반년 사이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그만큼 악화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정규철 KDI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이후 경제회복 국면이 마무리되고 있다”면서 “내년 상반기에 경기가 크게 둔화하고 하반기에 다소 회복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성장률이 2%에 못 미치는 것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코로나19 위기 때인 2020년(-0.7%)을 빼면 전례가 없다. 더 심각한 것은 KDI의 전망치가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친다고 본 점이다. KDI는 잠재성장률을 2%로 추정했는데 일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돈다는 것은 경기 침체의 신호로 여겨진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상승 등 부작용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뜻한다.
KDI가 우리 경제에서 가장 안 좋게 본 것은 경제성장의 주축인 수출이다. KDI는 내년 수출 증가율(물량 기준)이 올해 대비 1.6%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수출 증가율 추정치인 4.3%에 견주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의 초긴축 여파로 각국 중앙은행도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를 올리면서 경기 침체에 따른 글로벌 교역 위축이 불가피한 데다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조치 등으로 대중(對中) 수출이 올해보다 더 줄어들 수 있다고 KDI는 예상했다.
내년 설비투자 증가율은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서 0.7%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은 전년 대비 3.7%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데 대외 여건이 악화하면서 내년에도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민간 소비도 크게 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KDI는 내년 민간 소비 증가율이 3.1%에 그쳐 올해(4.7%)보다 낮아질 것으로 봤다. 고금리에 따른 가계의 이자 부담도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KDI는 “코로나19 영향에서 점차 벗어나며 서비스 소비가 회복되겠지만 고물가로 실질 구매력이 낮아지고 금리 상승으로 재화 소비가 둔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KDI는 경기 침체 신호가 커진 만큼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내외 여건이 모두 나빠진 가운데 한국은행이 지금처럼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아 돈줄을 조이면 민간의 성장세가 더 제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KDI는 내년 물가 상승률이 3.2%로 올해(5.1%)보다는 소폭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물가 상승세가 지금보다 더 확대되면 금리를 더 가파르게 인상해야 할 테지만 (내년 물가 상승률은) 다소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물가 흐름을 지켜보되 당분간은 금리를 천천히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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