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실리콘밸리 해고의 계절…원하지 않는 귀향 [정혜진의 Whynot 실리콘밸리]

[정혜진의 Whynot 실리콘밸리]

직장 잃으면 본국 돌아가야 하는

H-1B비자 직원 12~15%에 달해

채용 빙하기에 수천명 출국 위기

빅테크 경쟁력·다양성에도 위협

사진 제공=이미지투데이




‘어떻게 오랫동안 테라노스의 비밀이 지켜질 수 있었는가.’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의 사기극을 세상에 알린 존 캐리루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에게는 궁금증이 있었다. 한 방울의 혈액만으로 200여 가지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며 7억 2400만 달러(약 9700억 원)의 투자금을 모았지만 이 기술은 몇 년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었다. 캐리루 기자는 핵심 엔지니어들이 창업자 홈스와 2인자였던 서니 발와니에게 직언을 하지 못한 기업 문화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수십 명의 인도인들에게 해고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단순히 월급을 못 받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대부분 미국에 H-1B 비자로 체류하고 있었고 고용 지속 여부에 따라 미국에서의 신분이 보장됐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에 반박하는 이들을 거침없이 해고하는 홈스와 발와니를 상대로 직언을 한다는 건 해고와 동시에 미국을 떠나야 하는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의미였다.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경우 기업마다 12~15%에 달하는 이들이 H-1B 비자로 일을 시작한다. 외국인이 미국에서 일할 기회를 주는 수단이지만 고용주가 해고하면 언제든 떠나야 하기 때문에 큰 불안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미국 정부는 연간 최대 8만 5000명(박사 학위 소지자 2만 명 포함)이라는 상한선을 뒀다. 신청자들의 국적별로 쿼터가 있어 가장 많은 인원이 미국에서 일하는 인도의 경우 경쟁률이 10 대 1 이상 높은 해도 있다. H-1B 비자의 경쟁률을 뚫는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최대 6년 안에 영주권을 획득해 안정적인 체류 상태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에서 해고되고 이로부터 60일 이내에 운 좋게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높은 연봉을 받고 빅테크에서 일하는 실리콘밸리 사람들도 저마다 영주권을 얻기까지 막연한 불안감을 얻고 살아간다. 해마다 상한선을 늘리거나 보다 안정적인 근로자 비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정치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들에게 유독 가혹한 올 연말이 왔다. 팬데믹 이후 덩치를 키운 빅테크가 경기 침체로 인해 인력 감축을 시작하면서다. 가장 큰 충격은 메타의 대규모 정리 해고였다. 미국 내 H-1B 비자의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조차 직원 전체의 13%에 달하는 1만 1000여 명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메타의 경우 약 15%에 달하는 인원이 H-1B 소지자로 여겨지고 있다. 일부는 이제 막 H-1B 비자를 발급 받아 미국 땅을 밟자마자 채용 취소 소식을 듣기도 했다. 저커버그 메타 CEO는 H-1B 비자를 소지한 이들에게 미국에 체류할 수 있는 기한을 늘리는 도움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예정된 채용 동결은 뼈아프다. 아마존도 1만여 명을 해고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트위터는 이미 3700여 명을 해고했다.



포브스는 출국 위기에 놓인 빅테크 근로자들이 수천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인도 테크 기업에서는 본국으로 유입되는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십여 년 전 중국 인재들이 대거 떠났을 때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밸리는 저마다 실력만 있다면 인종·국적 측면에서 소수자라도 기회가 주어지는 개방성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인재들이 이곳에서 일할 기회는 요원해진다. 기업들이 앞다퉈 채용을 동결하는 경기 침체기에는 미국에 남기 위해 일방적으로 불리한 고용 계약에 놓이는 이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조직 문화의 수평성과 다양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 트위터 CEO가 ‘새로운 트위터 2.0에서 일하기 싫은 이들은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했을 때도 H-1B 비자 소지자라는 이유로 남은 이들은 예스맨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고용주가 불리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엄격하게 제한한 H-1B 비자가 빅테크의 경쟁력까지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 설명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