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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 맑은 웃음

- 공광규

캄캄한 밤 시골집 마당 수돗가에 나와

옷을 홀딱 벗고 멱을 감는데

수만 개 눈동자들이 말똥말똥 내려다보고 있다

날이 저물어 우리로 간 송아지와 염소와 노루와

풀잎과 나무에 깃들인 곤충과 새들이

물 끼얹는 소리에 깨어 내려다보는 것이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나를

들판과 나무 위를 깝죽깝죽 옮겨 다니면서

왠 낯선 짐승인가? 궁금해했던 것들이다



나는 저들의 잠을 깨운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삼겹살로 접히는 뱃살이 창피하여

몸에 수건을 감고 얼른 방으로 뛰어가는데

깔깔깔 웃음소리가 방 안까지 따라온다

“얘들아, 꼬리가 앞에 달린 털 뽑힌 돼지 봤지?”





시인 아저씨도 참! 우리가 말똥말똥, 깝죽깝죽, 깔깔깔 웃기야 했지만, 그리 미안해 할 일은 아니었어요. 수돗물 소리에 선잠 깨기는커녕 우리도 더워서 뒤척이던 참이었죠. 삼겹살 뱃살타령도 괜한 자격지심이죠. 초콜릿 복근 보고 부러워하는 노루 없으니까요. 어릴 적 깨복쟁이 고향 돌아와 훌훌 벗으니 반가워서 수런거렸을 뿐이죠. 우리들 입장에서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발가벗은 이가 아니죠. 남의 살가죽 벗겨, 입고, 신고, 두르는 이들이죠. 다시 나와서 천천히 비눗물 마저 헹구세요. 부드러운 비단 달빛으로 몸 닦으셔요. 그리고, 꼬리가 앞에 달렸다는 그 말 과대망상이셔요.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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