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로 여는 수요일]눈의 묵시록


- 송종찬

갈 데까지 간 사랑은 아름답다

잔해가 없다

그곳이 하늘 끝이라도

사막의 한가운데라도

끝끝내 돌아와

가장 낮은 곳에서 점자처럼 빛난다

눈이 따스한 것은

모든 것을 다 태웠기 때문

눈이 빛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기 때문

촛불을 켜고

눈의 점자를 읽는 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연애도

전쟁도 멈춰야 한다

상점도 공장도 문을 닫고

신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성체를 받듯 두 눈을 감고

혀를 내밀어보면

뼛속까지 드러나는 과거

갈 데까지 간 사랑은

흔적이 없다





눈은 내려앉을 자리를 걱정하지 않는다. 순백의 빛깔을 지녔지만 그곳이 진흙이든, 잿더미든, 시궁창이든 가리지 않는다. 강물에 떨어져 가뭇없이 녹더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차별 없는 마음으로 갈 데까지 가고 만다. 서로 다른 색깔과 형태를 뽐내며 맞서고 다투던 것들을 하나로 감싸 안는다. 전쟁을 하다가, 장사를 하다가, 공장을 돌리다가도 흰 눈이 내리면 마음을 멈추게 된다. 모나고 이지러진 것들이 대책 없이 한 이불 덮은 걸 보면 서로가 한 형제인 걸 알게 된다. 갈 데까지 간 사랑은 흔적이 없지만, 올 데까지 오신 사랑은 만물에 스미어 새로운 생명이 된다. 2022년 메리 화이트 크리스마스!

- 시인 반칠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