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도쿄 선언’ 40주년을 하루 앞두고 경영진과 임직원들에게 “끊임없이 혁신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을 키우자”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7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의 퀀텀닷 유기발광다이오드(QD OLED) 패널 생산 라인을 둘러본 뒤 제품개발직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미래 핵심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역설했다. 이 회장은 삼성디스플레이 경영진과도 만나 △정보기술(IT) 기기용 디스플레이 시장 현황 △전장용 디스플레이 사업 현황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개발 로드맵 등을 논의했다.
재계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의 QD OLED 제조 라인 현장 시찰일을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도쿄 선언’ 40주년 하루 전날에 맞춘 것에 특히 주목했다. 선제 투자와 초격차 미래 기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국가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린 이 창업회장과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살리겠다는 이 회장의 새 ‘승부수’가 반영된 행보라는 진단이다.
도쿄 선언은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 있던 이 창업회장이 한국의 반도체 사업 진출 계획을 처음으로 알린 사건이다. 이 창업회장은 삼성이 가전제품용 고밀도집적회로(LSI)도 겨우 만들던 시절에 첨단 기술인 초고밀도집적회로(VLSI)에 대규모로 투자한다고 밝혔다. 투자에 실패할 경우 그룹 전체가 와해될 수준의 구상이었다. 삼성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손을 대기는 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던 상황이었다.
당시 미국 인텔은 이 창업회장을 가리켜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웃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도 나왔다. 한국 정부도 이 창업회장의 도전 정신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후 삼성은 보란 듯이 반도체 신화를 썼다. 삼성전자는 1983년 반도체 공장을 단 6개월 만에 짓고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을 개발했다. 1987년 일본 기업들이 불황을 맞아 설비투자를 축소할 때는 삼성은 오히려 신규 라인을 늘리는 모험의 길을 갔다. 곧이어 찾아올 호황기를 예상한 이 창업회장의 선견지명 덕분이었다.
누적 적자를 단번에 해소한 삼성은 이 선대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뒤 명실상부한 글로벌 1등 기업으로 ‘퀀텀점프’했다. 4M D램을 개발할 때는 ‘트렌치’와 ‘스택’ 방식을 놓고 다른 나라 기업들이 갈팡질팡할 때 이 선대회장은 수율이 높은 스택 방식을 과감히 채택했다. 스택 방식이 64M D램까지 주류 기술이 되면서 이는 삼성이 메모리반도체 부문 세계 1위에 오르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삼성전자는 1993년 이후 현재까지 30년 동안 메모리반도체 글로벌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1996년 1기가 D램부터 2016년 10나노급 D램까지 ‘세계 최초’ 기술을 쉬지 않고 선보였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이 선대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지금도 재계의 전설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의 이날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방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룩한 성취를 현 위기 속에서도 재연하겠다는 결연한 메시지로 해석됐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생존과 도약이 우리나라 정보기술(IT)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필수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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