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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기부’ 아닌 정치기부금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총괄전무





우리는 매년 초 연말정산을 할 때면 공제 항목들을 자세히 살펴본다. 유리 지갑이라고 불리는 직장인들은 세금 부담이 적지 않아 공제 항목 하나하나가 아쉽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기부금은 근로자 1인당 연간 10만 원까지 전액 돌려주고 있어 세제 혜택이 크다.

이러한 소액 정치기부금 전액공제제도는 2000년대 초 불법적인 대규모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고 그 대신 다수에 의한 소액 정치기부금을 활성화하고자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선의에 의한 정책이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듯 이 제도 또한 많은 문제점이 있다.

먼저 전액 공제에 대해 과연 ‘기부금’이라고 칭하는 것이 합당한지이다. 정치기부금을 10만 원까지는 전액 돌려받기 때문에 실제 자신이 기부한 것은 전혀 없음에도 ‘기부’라는 명목을 붙이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다음으로 다른 기부금과의 형평성 문제이다. 현재 구호 활동이나 예술, 문화 진흥과 같은 공익 활동을 위한 거의 모든 기부금의 세액공제율은 15% 내지 30% 수준이다. 다른 대부분의 기부금과 달리 정치기부금을 전액 공제(10만 원)해야 할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선진국 사례를 봐도 소액 정치자금 기부 전액공제제도를 찾아 볼 수 없다. 주요7개국(G7) 가운데 미국과 영국은 정치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이 아예 없고, 일본·독일·프랑스·이탈리아는 다른 기부금과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의 세제 혜택을 적용하고 있다. 기부금이 사회 통념상 타인을 원조할 목적으로 하등의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재산을 무상 증여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제도의 악용(惡用) 문제이다. 대규모 소속 회원을 두고 있는 일부 이익단체들이 소속 직원, 또는 개인 회원들에게 10만 원까지 정치자금 기부를 유도하는, 이른바 ‘쪼개기 후원’ 방식으로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 개인별로 전액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이 10만 원이기 때문에 1000명의 회원을 가진 단체는 1억 원의 정치자금을 실질적인 부담 없이 정치인들에게 지원할 수 있고 이는 이익단체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입법을 도모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쪼개기 후원’을 통해 음성적인 로비 활동이 이뤄지는 것은 과거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했던 취지에도 맞지 않고 오히려 국가가 일부 대규모 이익단체의 정치 활동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물론 당초 제도의 취지와 같이 투명한 정치 활동을 위한 국가 지원은 필요하지만 전액공제제도의 부작용은 개선돼야 한다. 매년 몇 백 억 원의 세금을 국가가 정치자금의 재원으로 투입하는 것인 만큼 본래 기부금 제도 취지와 형평성에 맞게 혜택을 재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부는 본인의 부담이 조금이라도 들어갈 때 그 본래의 의미를 살릴 수 있고 한편으로는 후원금에 혹시 포획될 위험성을 사전에 막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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