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9일 중국을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전격 회동하며 미중 갈등을 풀기 위한 대화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 역시 블링컨 장관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시 주석에게 전달하며 화해 제스처를 보였다. 특히 시진핑은 “블링컨 방중으로 일부 합의를 달성했다”며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번 블링컨 장관의 방중으로 미중 관계가 개선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 등 일부 문제에서는 이견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악화된 미중 관계를 되돌리기 위한 초석을 놓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블링컨 장관 일행과 만나 “넓은 지구는 중국과 미국이 각자 발전하고 함께 번영하기에 충분하다”며 양국 관계 정상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중국 인민은 미국 인민과 마찬가지로 자존심과 자신감이 강한 인민이며 모두 더 나은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며 “중국은 항상 중미 관계가 건전하고 안정되기를 바라며 두 강대국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며 협력하고 윈윈하는 올바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보낸 인사를 전하며 “미국 측은 발리에서 양국 정상이 만나 확정한 논의 일정으로 되돌아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신냉전을 원하지 않고 ‘대만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충돌 의사가 없다는 뜻도 전했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신중 모드로 접근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블링컨 장관은 이날 시 주석과 회동 이후 베이징 미국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 인사들과의 협의 과정에서 북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북한이 대화에 나서도록 압박할 수 있는 “특별한(unique) 위치(역할)”에 있다며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촉구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이 러시아에 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도 했다.
블링컨 장관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 주석을 초청한다는 뜻을 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 시 주석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안부를 전하는 등 연내 양국 정상의 회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앞서 블링컨 장관은 중국 외교 라인 최고위급 인사들과 연쇄 회동하며 양국 간 경쟁이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고위급 접촉을 유지하기로 하는 등 크게 4개 분야에서 합의를 이뤄냈지만 몇몇 이슈에 대해서는 간극이 크다는 점을 확인했다. 양국 모두 갈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군사적 충돌 등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줄었지만 상대 국가를 향한 무역 제재 해제 등에는 큰 진전이 없었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지속적인 소통이 이뤄져야 비로소 구체적인 해법이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환구시보 등 관영 매체에 따르면 전날 방중한 블링컨 장관이 이날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중국 외교 라인 1인자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과 만났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왕 위원은 블링컨 장관에게 중국에 대한 일방적 제재를 철회하고 첨단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대중국 봉쇄 조치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대만 문제와 통일에 대해 왕 위원은 “대만 문제의 실체를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고 국가 통일을 유지하는 것은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이라며 “타협하거나 양보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전날 친강 중국 외교부장과 양국 관계 현안을 놓고 8시간 가까이 회담과 만찬을 이어간 데 이어 이날 왕 위원과 회동하며 중국 외교 라인 1·2인자와 모두 만났다.
블링컨 장관과 친 부장은 전날 만나 미중 양국의 현재 갈등이 충돌로 비화하지 않는 방안, 이른바 ‘가드레일(안전장치)’에 대해 논의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알려졌다. 양측은 △고위급 접촉 유지 △미중 관계 이행 지침에 대한 협의 진전 △현안 해결을 위한 미중 워킹그룹 협의 △인적 및 교육 교류 확대 등 네 가지 분야에 합의했다.
이번 회담에 대해 미국 측은 “솔직하고 실질적이며 건설적인 대화를 했다”고 평가했고 중국 측도 “장시간 솔직하고 심층적이며 건설적인 의사소통을 했다”며 비슷하게 평가했다.
양국 외교부 최고위급이 대면 회담을 통해 양국의 입장 차이는 물론 관계 개선의 의지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만큼 향후 추가 접촉을 통해 관계 개선이 이어질지 주목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은 대중 무역정책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향후 방중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시 주석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바이든 대통령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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