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규제 완화 등으로 부동산 경착륙을 피했으나 들썩이는 집값에 가계부채가 늘어나면서 금융 위험이 다시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집값이 급락하면 전세 보증금 반환 부담 확대, 미분양 물량 증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등 각종 리스크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면서도 집값이 올라 발생할 수 있는 금융 불균형 문제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다.
21일 한은이 발표한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중장기적인 금융 시스템 위험을 보여주는 금융취약성지수(FVI)가 올해 1분기 48.1로 전년 말(46.0) 대비 소폭 상승했다. 2007년 1분기~2023년 1분기 장기 평균인 39.4보다 높은 수준이다. 중장기적인 금융 취약성이 커지면 대내외 충격에 대한 대응 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FVI가 약 2년 만에 상승 전환한 것은 부동산 가격 하락에도 채권·주식시장이 호조세를 보이고 기업대출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4~5월 가계대출이 증가세로 돌아선 데다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집값 상승세가 나타나는 것을 감안하면 FVI는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김인구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4월 이후 가계대출이 늘어난 것을 보면 (올 2분기) FVI가 반등하는 폭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은은 가계부채 관리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도 부동산 경착륙을 더 크게 우려한다. 이날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FVI가 상승하고 가계대출이 증가 전환했지만 아직 크게 우려할 부분은 아니다”라며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역전세 등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미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보고서도 집값 상승보다는 급락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먼저 집값이 급히 조정되면 가계 순자산 규모가 줄면서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전셋값 하락으로 임대 가구의 전세 보증금 반환 부담도 크게 늘 수 있다. 전세 임대 116만 7000가구 가운데 4.1~7.6%는 대출을 받아도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됐다.
특히 주택 경기 부진으로 늘어난 미분양 주택 물량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4월 2만 7000채에서 올해 4월 7만 1000채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민간 아파트 초기 분양률은 올 1분기 49.5%로 2021년 말(93.8%) 대비 크게 떨어졌다. 과거 미분양 주택이 급증했던 2007~2008년 시기를 보면 미분양 주택이 증가한 후 3년의 시차를 두고 건설사의 부실 위험이 크게 높아진 바 있다.
김 국장은 “주택 시장 부진 장기화로 부실이 확대되지 않도록 실수요자 위주의 규제 완화, 분양가 조정,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에 직면한 전세 세입자 보호 방안 마련 등 대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가계대출 연체율도 점차 상승하는 등 가계 전반의 건전성 우려도 커지고 있다. 3월 말 전체 가계대출 연체율은 0.83%로 반년 전보다 상승했다. 연체가 발생한 절반 이상이 취약 차주다. 특히 비은행금융기관 중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사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3월 말 기준 각각 5.6%, 2.8%로 비교적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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