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을 보장했던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데 이어 인도까지 쌀 수출을 기습 금지하면서 농산물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밀·옥수수 등의 값이 치솟으면서 농산물 ETF들의 최근 수익률은 일부 2차전지 ETF보다 높은 수준까지 올라갔다. 투자 전문가들은 엘니뇨에 따른 작황 악화 우려로 가뜩이나 농산물 가격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잇따르자 해당 ETF들이 단기적으로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의 ‘KODEX 3대농산물선물(H)’은 전날 하루 동안에만 2.80% 올라 레버리지(차입)·인버스(역방향) 상품을 포함한 전체 742개 ETF 중 수익률 2위를 차지했다. 이 상품은 포트폴리오의 95%가량을 옥수수·밀·대두 선물로만 채웠다. 옥수수·밀·대두 선물에 70% 안팎을 투자하고 나머지는 설탕 선물과 옥수수 현물로 채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농산물선물Enhanced(H)’ 가격 역시 같은 날 2.43% 상승했다.
두 ETF가 오름세를 보인 건 비단 20일뿐이 아니었다. TIGER 농산물선물Enhanced(H)와 KODEX 3대농산물선물(H)은 14~20일 5거래일 동안만 각각 12.07%, 9.24% 뛰었다. 이는 ‘KODEX 2차전지산업’ 10.12%, ‘TIGER KRX2차전지K-뉴딜’ 8.69% 등 같은 기간 급등주로 분류된 일부 2차전지 ETF마저 제친 수익률이었다.
주가 급등세에 같은 기간 TIGER 농산물선물Enhanced(H)과 KODEX 3대농산물선물(H)에는 94억 원, 11억 원씩 총 105억 원이 새로 유입되기도 했다. 두 ETF의 순자산이 전날 기준 296억 원, 166억 원씩 총 462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전체 순자산의 20%가 넘는 금액이 5거래일 만에 유입된 셈이다.
두 ETF의 가파른 상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달 13일(현지 시간) 자국 방송 인터뷰에서 “흑해곡물협정(러시아가 흑해를 지나는 곡물 수출 선박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의 협정)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시작했다. 이어 17일 러시아가 실제로 협정을 파기하고 19일부터 주요 곡물 수출항인 오데사항을 매일 폭격하자 밀·옥수수 선물 가격이 18일과 19일 각각 11%, 9%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지며 당분간 밀을 비롯한 주요 농산물과 이를 추종하는 ETF 가격이 상승 흐름을 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특히 흑해곡물협정이 이대로 종료될 경우 전 세계 4위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수출량은 월 400만~500만 톤에서 100만 톤 수준까지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인도의 쌀 수출 금지 조치가 장기화하면 쌀값은 물론 이를 대체할 곡물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고찬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협정 파기 우려는 7월 초부터 주가에 반영됐지만 항구 폭격에 따른 곡물 수출 차질은 새로운 사안”이라며 “단기적으로 밀 가격의 변동성이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들어 러시아가 원유 수출을 줄이는 등 원자재를 무기화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 협정 연장 가능성이 더 낮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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