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세수 펑크에 신음하는 정부가 올 들어 한국은행에서 100조 원이 넘는 돈을 빌려 급한 불을 끈 것으로 확인됐다. 전산 통계가 시작된 2010년 이후 가장 큰 대출 규모다. 이미 한은에 지급한 이자만 1100억 원이 넘는다. 세수 펑크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향후 차입 규모도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한은으로부터 총 100조 8000억 원(7월 말·누적액 기준)의 차입금을 조달했다.
이는 해당 통계가 전산화된 2010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많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정부가 받은 총차입금 34조 2000억 원의 3배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쇼크로 네 차례에 걸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던 2020년 1~7월 대출액(90조 5000억 원)도 넘어섰다.
한은 차입금은 당장 쓸 돈이 없는 정부가 세금이 걷히기 전 일시적으로 한은으로부터 빌려 쓰는 자금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마이너스통장’으로 불린다. 차입금은 나중에 들어온 세금으로 갚는다. 올해 정부는 한은 대출 잔액이 50조 원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빌리고 갚기를 반복해왔다. 7월 말 기준 정부의 한은에 대한 일시 대출 잔액은 0원으로, 100조 8000억 원을 빌렸다가 모두 상환했다.
올해 한은 차입금이 1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40조 원이 넘는 세수 펑크 때문이다. 거둬들인 세금이 적어 지출에 필요한 재원이 모자라다 보니 한은에서 차입금을 끌어다 쓴 것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6월까지 정부의 총수입(296조 2000억 원)에서 총지출(351조 7000억 원)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6월 말 기준 55조 400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상반기 국세 수입은 178조 5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39조 7000억 원 줄었으며 세수 진도율 역시 44.6%에 그쳤다. 지난해 6월의 55.1%와 비교하면 10%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한은 차입금이 늘면서 이자비용도 불어나고 있다. 정부가 올해 한은에 지급한 이자만 6월 말 기준 1141억 원이다. 역시 관련 전산 통계가 있는 2010년 이후 최대 규모다. 경기 둔화 장기화와 부동산 시장 침체, 각종 감세 조치를 고려하면 향후 정부 차입과 이자 부담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돈을 발행해 일시 대출금을 마련하기 때문에 정부가 돈을 빌릴수록 원화 값이 떨어지고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도 1월 대출 조건을 결정하면서 “한은 차입에 앞서 재정증권(국채·지방채 등)을 통해 조달하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에 3%대 총지출 증가율을 기준으로 예산편성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기 둔화가 계속되는 만큼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재정 투입으로 경기 활성화에 나서야 내년도 세입이 늘어난다는 논리다.
내년 4월 총선도 변수다.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꾸준히 경기 대응 등을 위한 추경 편성을 주장하는 상황인데 여당에서도 적극적인 재정 투입으로 표심을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2020년 총선 직전 살포한 현금성 재난지원금이 민주당 압승의 배경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빠른 속도로 불어나는 국가채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내년도 예산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국조차 불어나는 재정적자에 피치가 장기 신용등급을 내렸을 정도 아닌가”라며 “세수 펑크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내년 긴축재정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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