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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빅테크 주가 이면에 드리운 살풍경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실리콘밸리, 연일 테크기업 '해고' 삭풍

실력 좋은 개발자·시민권자도 살얼음판

대량 감원 한편선 고급인재 채용 분주

화려한 성공 뒤에 실패의 그림자 공존


실리콘밸리 한복판에 자리한 새너제이국제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용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 중 하나다. 오가는 비행기 셋 중 하나는 소형 비즈니스 제트다. 활주로는 새너제이 도심 한복판을 향해 있어 시내 어디서든 착륙을 앞둔 비행기와 그 소음을 접할 수 있다. 빌딩 사이로 머리 위를 지나는 전용기의 위용은 ‘혁신과 기회의 땅’ 실리콘밸리를 상징하는 듯하다.

비행기를 가장 가까이 관찰할 수 있는 곳은 활주로 남쪽에 붙어 있는 과달루페강이다. 천변 공원에서는 착륙을 수 초 앞둔 전용기의 새하얀 배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하늘을 스친다. 성공은 이토록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멀기만 하다.

화려한 기회의 땅, 실리콘밸리에 아름다운 풍경만 있는 건 아니다. 과달루페공원은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노숙자촌이다. 노숙자 텐트 위로 단 한 사람을 위한, 대당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전용기가 끝없이 날아든다. 전용기 속 부호가 하늘에서 마약 파티를 벌일 때 텐트 속 노숙자는 지상에서 펜타닐에 취해 비틀거린다. 노숙인 중 누군가는 한때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빅테크 직원이었을 수도 있다. 야망이 넘치던 창업가였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소름이 돋는다. 꿈과 현실, 성공과 실패가 한 점에서 교차한다. 참으로 미국적인 살풍경이다.

챗GPT의 그림 생성 인공지능(AI) ‘달리(Dall-E)3’이 칼럼을 토대로 그린 그림.




실리콘밸리에도 한인 맘카페가 있다. 여느 맘카페와 같지만 잊을 만하면 해고 관련 게시물이 올라온다. ‘남편이 직장을 잃은 지 1년이 지났다. 모아놓은 돈도 떨어졌는데 아이들 학비를 내야 한다. 죽고만 싶다.’ 이런 글을 보고 있자면 숨이 막혀온다. 최근 실리콘밸리는 인력 감축 소식이 없는 날이 드물다. 테크 업계 감원 현황을 추적하는 ‘레이오프’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15일까지 154개 기업이 3만 9496명을 집에 보냈다. 아직 2월 중순에 불과한데 지난해 4분기 총 해고 인원인 2만 3193명을 이미 넘어섰다. 실리콘밸리 생리에 익숙한 이들은 “동양인 이민자부터 잘린다”고 입을 모은다. 회사가 비자를 지원하는 외국인 노동자부터 대상이 된다는 ‘합리적 추론’에서다.

이곳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룸메이트나 월세 계약 승계자를 구하는 급매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다수가 해고를 이유로 든다. 룸메이트나 자신이 직장을 잃어 급히 실리콘밸리를 떠나게 된 것이다. 이 지역 월세는 방 한 칸에 2500달러(약 334만 원)를 웃돈다. 억대 연봉자였더라도 월급이 끊기면 몇 달 버티지 못하고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다. 비자 만료까지 재취업이 안 된다면 방법은 귀국뿐이다. 시민권자라면 문제가 없을까. 빅테크를 마다하고 한국 기업을 택한 한국계 미국인은 “빅테크에 입사했으면 이미 해고당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비개발 직군 동양인은 미국 시민이어도 해고 2순위”라고 귀띔했다.



지금이라도 코딩을 배우는 게 답일까. 실력 좋은 개발자도 영주권 없이는 ‘을’일 뿐이다. 애플에 반도체 설계 직군으로 재직 중인 한 지인은 주말도, 밤낮도 없이 일한다. 명목상 ‘주3일 재택근무’가 가능하지만 실상은 집에서 ‘주말이 없는 삶’을 보내기 마련이다. 한국 기업으로의 이직을 고민했다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영주권 취득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잦은 이직이 어떤 리스크로 돌아올지 모르는 탓이다.

비자 문제가 해결된 개발자도 ‘꽃길’을 장담할 수 없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모두가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내 생각은) 정반대”라고 밝혔다. 그는 “인공지능(AI)의 기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생명공학을 전공하겠다”고 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수준의 AI 개발을 이끌 최고급 개발자가 아니라면 가장 먼저 AI에 대체될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 빅테크들은 대량 감원의 한편에서 AI 인재를 채용하느라 분주하다. 평범한 개발자와 비개발 직군의 인건비를 최고급 AI 개발자에게 몰아주는 것이다. 뒤늦게 개발자로 전직한 이들이 상위 0.1% AI 개발자가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실리콘밸리를 향하는 도전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하늘 높이 치솟는 빅테크 주가 이면에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음을 기억하기 바랄 뿐이다. 끝없는 경쟁에서 미끄러졌을 때 이민자가 딛고 일어설 지지대는 부실하기만 하다. 추락을 막기 위해서는 보다 단단한 발판을 준비해야 한다. 빛나는 성공에는 실패의 그림자가 공존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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