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사고를 빚은 SK텔레콤(017670)이 법적으로 가입자에게 위약금을 면제할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정부의 판단이 이르면 다음달 나온다. 정부는 법률 검토와 함께 다음달 말까지 2개월가량 진행될 SK텔레콤의 과실 여부 등 해킹사고 조사결과를 종합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방침이다. SK텔레콤의 신규 영업 중단 조치는 최장 4개월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 핵심과제 4차 국민 브리핑’을 열고 “위약금 면제 여부는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까지 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조사기간은 (지난달 23일부터) 2개월가량 잡고 있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이 해킹 피해보상을 위해 요금제 해지를 원하는 가입자에게 위약금을 면제해줘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주무부처의 판단이 구체화하려면 사고 원인과 경위 조사를 통한 SK텔레콤의 책임을 먼저 가려내야 한다는 취지다.
유 장관은 “SK텔레콤 이용약관상 ‘귀책’과 관련해 회사가 얼마나 보안 책임을 다했는지, 기술적으로 해커가 어떻게 (내부망에) 타고 들어왔는지 등 모든 것을 상세하게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률 검토도 진행 중이다. SK텔레콤 이용약관상 ‘회사 귀책 시 위약금 면제’ 조항이 있지만 전기통신사업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 등 현행법에 관련 피해 보상 책임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유 장관은 “법무법인 4곳으로부터 위약금 면제 여부에 대한 법률 검토보고서를 받았다”며 “요약본만 봐서는 아직 예스인지 노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추가적인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위약금 면제 문제는 SK텔레콤에게 사활이 걸린 큰 문제일 수 있어 신중하고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사태 대응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SK텔레콤 스스로도 정치권과 국민 비판에도 불구하고 위약금 면제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유상임 SK텔레콤 대표는 전날 국회 청문회에서 “(위약금 면제가 현실화할 경우) 한 달 기준 최대 500만 명까지 이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럴 경우 위약금과 매출까지 고려하면 3년간 7조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조사단으로부터 내부 보고를 받고 2차 조사결과 발표 여부도 검토한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29일 1차 조사결과 SK텔레콤 서버 5대에 악성코드 4종이 감염돼 일부 유심 정보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악성코드 8종이 더 발견되는 등 추가 공격이나 피해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이달 1일 SK텔레콤에게 내린 신규 영업 중단 행정지도는 짧으면 2개월, 길게는 4개월가량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신규 가입용 유심보다 기존 가입자를 위한 유심 교체 물량을 먼저 챙기라는 취지였는데 당분간 안정적인 수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유 장관은 “최소 2달은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신규 가입자 모집을 중단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며 “가입자 2500만 명분 유심이 필요한데 경우 (수급까지) 3~4개월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교체 예약자만 800만 명이고 저도 예약을 한 상태인데 유심이 없어서 기다려달라는 (SK텔레콤 측) 공지가 온다”고 했다. 과기정통부는 다만 SK텔레콤 거의 모든 가입자에게 유심보호서비스가 적용된 점, 대리점이 영업 중단으로 피해를 본다는 점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유 장관은 “플랫폼사 등 민간기업 6000여개를 대상으로 문제가 된 악성코드 정보를 공유하고 SK텔레콤에게 이용자 피해 발생 시 100% 보상을 책임지는 구체적인 방안을 요구했다”며 정부 차원의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과기정통부는 한편 스페이스X의 저궤도 위성통신 서비스 ‘스타링크’의 국내 출시를 위한 마지막 행정 절차에 돌입한다. 유 장관은 “서비스 도입을 위한 제도 개선이 완료됨에 따라 스타링크코리아가 국내 사업 개시를 위해 스페이스X와 체결한 국경 간 공급 협정의 심사를 추진한다”고 말했다. 중고단말 거래사실 확인서비스와 안심거래 사업자 인증제도를 시행해 중고 스마트폰 거래 활성화도 꾀한다.
바이오·양자 등 첨단 과학기술 지원책도 마련됐다. 유 장관은 “합성생물학 하위법령 마련을 위한 전문가 자문단을 출범한다”며 “다양한 전문영역의 참여를 통해 시행령 제정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치매·파킨슨 등 뇌의약품 산업을 포함해 뇌공학 기반 융합산업 육성을 위한 ‘뇌 첨단산업 창출을 위한 연구개발(R&D) 전략’을 수립하기로 했다. 양자 분야에서는 양자기술 연구를 위한 개방형 인프라 구축 및 산학연 공동연구실 구성을 위한 ‘퀀텀플랫폼(양자 연구거점) 사업단’을 출범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협력해 대형 연구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과제당 연 1250억 원 규모의 ‘글로벌 톱 전략 연구단’ 선정 결과도 이달 발표된다.
또 ‘인공지능(AI) 혁신펀드’ 운영사 선정, 아태전기통신협의체(APT) 장관회의 참석, 출연연 시범평가, 행정안전부 공동 산불 대응 연구, 2025년 상반기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시상식 개최 등이 예정됐다. 유 장관은 엔비디아와 에너지부(DOE) 산하 연구기관 방문을 위한 미국 출장도 계획 중이다. 특히 엔비디아에 대해 “엔비디아가 한국에서도 행사를 개최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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