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각 국과의 무역협상 테이블에 환율 의제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4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는 블룸버그가 이날 앞서 미국과 한국이 지난 5일 이탈리아에서 만나 환율 조정을 논의했다고 보도한 이후, 미국의 약 달러 전략이 가동되고 있다는 관측이 커진 가운데 나왔다.
통신은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진행 중인 여러 무역 협상에서 환율을 의제로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상대국들이 부당하게 통화 가치를 조작하는 것을 자제하기를 원하지만 향후 협상에서 이런 정책을 언급할 계획은 없다고 블룸버그에 전했다.
소식통은 현재 베선트 장관이 트럼프 행정부 경제팀에서 환율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구성원이며, 무역 상대국과의 협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별도의 담당자를 배치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환율 문제는 오직 베선트 장관이 참석한 자리에서만 논의된다고 덧붙였다.
통신에 따르면 현재 베센트 장관의 환율 기조는 약달러가 아닌 강달러다. 베센트 장관은 이와 관련 지난 2월 이후 인터뷰 등을 통해 “강달러를 원한다”고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그는 지난 10일과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중국과의 무역 협상 당시에도 베이징 대표단과 “통화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도 했다.
이날 보도는 환율 시장이 아시아 통화를 중심으로 급변한 가운데 나왔다. 블룸버그는 앞서 한국과 미국이 지난 5일 밀라노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기간 중 만나 환율 논의를 했다고 보도했다. 국내 당국은 이 회동에 대해 최지영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급)과 로버트 캐프로스 미 재무부 아시아 담당 부차관보가 만났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과 미국이 지난달 24일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에서 양국 재무부 간 환율 정책 관련 논의를 별도 진행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협의 개시를 위한 첫 대면 회동 성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소식에 미국이 약달러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외환 시장에서 달러 가치가 하락했다. 이날 뉴욕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 1413.43보다 하락한(=원화 가치 상승) 1407.46에 거래됐다. 단스케은행의 분석가인 모하마드 알사라프는 “미국과 한국 회담 소식은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약세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
그간 미국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인도, 베트남, 독일 등이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의심해 왔다. 이 때문에 매년 환율보고서를 발표하고 미국을 상대로 큰 규모의 무역 흑자를 내고 있는 국가들을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해 압박해 왔다.
특히 스티븐 미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은 취임 전 지난해 11월 펴낸 보고서에서 미국이 관세를 앞세워 달러 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이른바 ‘마러라고 협약’을 추진할 수 있다고 전략을 제시했다. 이에 시장은 언젠가 트럼프 행정부가 인위적 약달러를 추진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카로바르 캐피털의 최고투자책임자(CIO) 하리스 쿠르시드는 “통화 조율에 대한 논의는 시기상조일 수 있지만, 외환 트레이더들은 분명히 경계심을 갖고 있다”며 “미국이 공식적으로 무역 협상에 통화를 포함시키든 아니든, 시장은 이미 달러 약세가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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