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쇼크 이후 프로바둑 기사들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AI는 누구나 쓸 수 있는 평등한 도구지만 선수별 활용능력 차이가 실력 차이를 더 크게 만들어버린 겁니다.”
2016년 알파고와 맞붙으며 오늘날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위협을 처음으로 경험했던 전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계공학과·AI대학원 특임교수는 2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포럼 2025’ 세션 발표를 통해 “AI는 단지 신기술이 아니라 더 넓은 길을 만드는 도구”라며 이 같이 말했다.
알파고에 4대1로 패배한 후 바둑계를 떠났던 이 교수가 전한 현재 프로바둑계의 상황은 당초 예상과 다르다. 모든 기보를 학습해 빈틈 없는 수를 두는 AI의 등장으로 그간 인간 기사의 전략 고민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앞서 나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인간 기사가 실력을 쌓는 도구로 AI가 활용되고 있으며 이에 기사 수가 더 늘고 해설도 전문화하는 등 바둑계가 더 발전했다는 게 이 교수의 전언이다.
그는 “AI가 판을 보여주면 고수는 전략을 짜고 하수는 해설로만 본다”며 “바둑계에서 AI 활용능력이 고수와 하수 간 실력 차이를 더 크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고 말했다. AI는 또 그동안 불리한 선택이라고만 여겨졌던 수를 찾아내며 기사들의 고정관념을 깨는가 하면 해설을 주관성 대신 분석 기반의 정확성 위주로 발전시켰다.
이 교수는 “AI 활용능력에 따른 격차는 기존보다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바둑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AI가 발전하면서 AI와 소통하는 사람의 가치도 함께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AI의 발전으로 바둑계가 그랬듯 이제 모든 사람이 비슷한 숙제를 안게 됐다”며 “AI라는 도구를 통해 이 사회가 더 공정하고 창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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