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에쿨리주맙을 써서 투석까지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예후가 좋아지는 후향연구가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는 예외입니다. 조기 치료 기준이 1주일인데 우리나라는 진단부터 투약까지 보통 한 달이 소요돼 ‘골든 타임’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이하정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유럽신장학회 연례 학술대회 중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신장은 혈류 의존도가 높은 만큼 비정형 용혈요독증후군(aHUS)에 대한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며 “신속심의를 해도 2주가 걸리는 데 병의 특성을 생각하면 너무 긴 시간”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aHUS는 보체 시스템의 조절실패로 신장과 전신의 미세혈관이 손상되는 희소질환이다. 혈소판 감소, 빈혈, 급성 신장 손상 등이 동시에 나타나 치료 시기를 놓치면 투석이나 신장이식을 받아야 한다. 치료제 사용을 위해선 건강보험 급여 사전승인을 받아야하는데 원인 유전자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고 다른 질환과 감별이 어려워 승인은 물론 소요되는 기간도 너무 길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 연구에 따르면 2018년 이후 4년간 사전심사 신청 환자 중 약 20%만 사용 승인을 받았다. 2022년만 보면 승인률이 9%에 그쳤다.
aHUS를 치료하는 의약품은 아스트라제네카의 솔리리스와 울토미리스가 대표적으로 각각의 1년 투약 비용은 3억 9000만원, 울토미리스는 4억 8000만 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인 암젠의 '베켐브'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에피스클리’가 출시돼 그나마 선택지가 넓어진 상황이다. 에피스클리 1년 투약 비용은 2억 7000만원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aHUS 환자들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심사기간 동안 최대 2달까지 에피스클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 교수는 “에피스클리와 같은 시밀러 등장으로 인한 선택지 증가는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희귀질환 환자 치료를 위해서는 제도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전심사제도 등은 현실적 재정을 위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중장기 측면에서 꼭 필요한 환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전문적 자문기구 등은 필요하다”며 “일본처럼 심사 전 현장 의료진들의 우선 투약 판단을 존중해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진이 어떤 치료를 할 지 빠르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관련 경험이 축적돼야 한다”며 “영국과 벨기에는 거점마다 다양한 희귀질환별 전문성과 데이터가 결집된 의료센터가 있는데 한국도 비슷한 제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