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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에 묶인 자산 2882조…"상증세 재설계해야 소비·투자 활력"

[혁신 막는 낡은 세제] <1> 늦어지는 '富의 이전'

상속세 과세 대상자 4년새 2배 급증

할증땐 최고 60%…자산 이전 꺼려

日, 증여 문턱 낮춰 경제 활력 유도

韓은 부자감세 프레임 탓 논의 부진

"稅 개편 통해 자산흐름 물꼬 터야"

60세 이상 고령층 가구의 부동산 자산 비중이 8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인천에 본가를 두고 손주들을 봐주기 위해 서울 성동구의 딸 집에 올라와 있는 박선자(69) 씨는 요즘 가슴이 답답하다. 30년 이상 거주한 인천의 다가구주택을 3억 원에 내놓았지만 아무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서다. 박 씨는 20년 전 고양시에 59㎡짜리 소형 아파트를 한 채 사둬 2주택자에 해당한다. 그는 “가진 현금도 없는데 인천의 낡은 집은 팔리지도 않을뿐더러 팔려도 세 부담이 너무 크다”며 “그렇다고 물려주자니 자식들에게 2주택자 족쇄를 채우는 셈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실버세대의 ‘자산 잠김’ 현상이 국가 경제를 억누를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서울경제신문과 통계청의 분석 결과 1차 베이비부머의 가구당 평균 자산은 6억 5136만 원으로 여기에 60대 가구 수(442만 4197가구)를 감안한 이들의 전체 자산은 약 2882조 원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훌쩍 넘어서는 값이다. 이 같은 막대한 자산이 세금 부담 때문에 자본시장으로 흘러들어오지 못해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우리나라 국세에서 상속·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전체 국세 336조 5000억 원 중 상속·증여세는 15조 3000억 원으로 그 비중이 4.5%에 달했다. 이는 고령화 추세를 감안해도 빠른 속도다. 한국의 상속세 부담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현재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상속세를 내는 사람들도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세 과세 대상자는 2만 1193명에 달했다. 상속세 대상자는 2020년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선 뒤 해마다 빠르게 늘고 있다.





상속·증여세의 확대는 세금 회피를 줄이고 과세 형평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자산 이전 과정에서의 높은 세금 부담이 이전 자체를 미루게 만들고 이로 인해 고령층 자산이 시장에 나오지 못하면서 경제 전반의 소비·투자 여력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고령층 자산 대부분이 움직이기 어려운 형태라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가구의 평균 자산은 5억 4022만 원, 이 가운데 부동산 등 실물 자산은 4억 644만원으로 전체의 75.2%를 차지했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층 가구의 부동산 자산 비중은 81.2%로 가장 높았다.

잠재적인 피상속인이 될 60대의 경우 자산 2881조 원 중 약 2339조 원이 부동산에 잠겨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물 자산 중에서도 대부분이 부동산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가구 평균 자산의 3분의 2 이상이 비유동성 자산에 묶여 있는 셈이다. 고령층 자산은 유동화나 분할이 쉽지 않다. 미국 28.5%, 일본 37%, 영국 46.2%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부동산 집중도가 2배 이상 높다.

그사이 다른 나라들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부터 자녀나 손자에게 연간 110만 엔(약 970만 원)까지 증여세 없이 넘길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또 생전 증여 후 3년 내 사망 시 해당 금액을 상속세 과세 대상에 포함하던 규정도 7년으로 늘렸다. 자산을 생전에 조기에 이전하도록 유도해 경제 안에서 돈이 돌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국내에서도 상속·증여세 제도 개선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증여세 공제 한도를 높이거나 가족 간 신탁 활용을 늘리는 방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일괄 공제와 배우자 공제를 각각 8억 원과 10억 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세금 때문에 집 팔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상속·증여세 완화는 공약에선 최종적으로 빠졌다.

전문가들은 고령 자산 잠김 현상이 해소돼야 창업, 자녀 교육 등 실물경제의 동력이 살아난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부자 감세 문제를 넘어 경제 활력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오문성 서울여대 교수는 “자본시장 활성화와 공정한 평가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상속세 전반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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