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무·회계 전공 교수 10명 중 6명은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을 현행과 다른 방식으로 회계처리해야 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생명의 유배당보험 회계처리가 현행 보험업 회계기준(IFRS17)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 또한 제기됐다.
한국회계기준원은 1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생명보험사의 관계사 주식 회계처리’ 포럼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준원은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11일까지 국내 재무회계 전공 교수 695명을 대상으로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 회계처리를 묻는 설문을 보냈고, 이 중 108명(부분 응답 포함)이 답변을 보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60.75%는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에 대해 지분법 회계처리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회신했다. 현행대로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FVOCI)’으로 처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답변한 비율은 15.89%에 그쳤다.
현재 회계학계와 보험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 회계처리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3월 삼성생명이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도록 승인한 것이 계기였다. 올 초 삼성화재가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삼성생명의 지분율(15.4%)이 15%를 웃돌았기 때문이다. 보험업법에서는 지분율이 15%를 넘으면 초과분의 주식을 팔거나 자회사로 편입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화재 주식을 ‘관계사’로 보고 지분법 처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일반적으로 관계사 회계처리는 지분율이 20% 이상일 때 한다. 다만 ‘유의적인 영향력’이 있다면 지분율이 20%를 밑돌아도 지분법 처리가 가능하다. 삼성화재의 경우 삼성생명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19.05%로 20%에 근접한다.
이날 기준원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진욱 건국대 경영대학 교수는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에 유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는 국제회계기준(IFRS)상 예시 등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경영진의 상호 교류 △삼성금융네트웍스의 ‘모니모’ 금융 애플리케이션 공동 개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블랙스톤 공동 펀드 투자 약정 체결 등이 ‘유의적 영향력’을 따질 때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배당보험과 지분법 회계
학계에서는 삼성생명의 유배당보험 문제가 이번 지분법 회계처리 논란을 증폭시켰다는 해석이 나온다. 만약 지분법 회계처리를 할 경우 삼성화재의 순이익 중 삼성생명의 지분율만큼을 순이익으로 반영해야 한다. 이 경우 삼성화재의 실적이 삼성생명의 당기손익에 영향을 줘 유배당계약자에 지급할 배당분이 늘어나게 된다.
실제로 이번에 기준원이 실시한 설문을 봐도 응답자 중 85.85%가 ‘유배당보험 계약자의 이익 미반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43.4%는 ‘회계처리 변경 등을 통해 시정해야 한다’고 했고 42.45%는 ‘회계기준을 바꿀 것까지는 아니고 보험감독이나 계약조건 개선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회신했다.
“유배당보험 ‘일탈회계’도 문제”
이날 포럼에서는 삼성생명의 유배당보험 회계처리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장은 이날 “삼성생명은 유배당계약자 돈으로 산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주식에 대해 계약자지분조정을 유지하는 공수표를 날리고 있다”며 “S사(삼성그룹)는 회계의 블랙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생명은 유배당보험 계약자에게 지급할 몫을 ‘계약자지분조정’ 항목으로 계상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취득원가와 시장가치 간의 차이를 계약자지분조정으로 잡는다. 유배당보험 가입자들의 돈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했으니, 이를 향후 지급해야 하는 부채로 남겨놓은 것이다.
문제는 계약자지분조정이 새 회계기준(IFRS17)과는 엄밀히 맞아 떨어지는 개념은 아니라는 점이다. IFRS17에서는 보험부채를 기본적으로 ‘미래에 지급해야 할 현금흐름’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입장에서는 삼성전자 지분을 팔지 않을 주식으로 봐야 되는데 이를 IFRS17상 보험부채로 잡으면 ‘향후 매각해야 한다’는 전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생명과 회계 당국은 IFRS17 도입 당시인 지난 2022년 IFRS17과 별도로 계약자지분조정을 설정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를 회계학적으로는 ‘일탈’이라고 표현한다. 일탈은 회계기준을 지킬 경우 재무제표 이용자의 오해를 유발한다고 판단되는 ‘극히 드문 상황’에 대해 다른 회계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포럼에서는 이 같은 일탈이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공정가치 평가를 쓰는 다른 보험상품과 다르게 유배당보험 상품만 원가 방식으로 장부에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 2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팔면서 이 같은 일탈의 전제 자체가 깨졌다는 지적이다. 계약자지분조정은 기본적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팔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잡는 계정이기 때문이다.
박정혁 기준원 연구위원은 “지난 2023~2024년 안드레아스 바르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위원장과 세 차례 만났는데 그는 그때마다 계약자지분조정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며 “계약자지분조정은 일탈회계가 아닌 한국 생명보험 업계의 문제로 IFRS에서 카브아웃(carved-out·부분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취지였다”고 했다. 박 위원은 “일탈회계 철회와 IFRS17 원칙으로의 복귀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도 했다.
이날 포럼에는 삼성생명 측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삼성생명 감사인을 맡고 있는 삼일회계법인 측에서 토론자로 나왔다. 진봉재 삼일회계법인 부대표는 “IFRS17을 적용하기 전 온갖 방법으로 (유배당보험) 보험부채를 계산했는데도 이것이 과소계상되는 결과가 초래됐었다”며 “최초 IFRS17을 적용했던 시점에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면 지속적으로 (기존대로) 회계처리가 돼야 한다고 말씀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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