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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코스의 조율사들’…골프 레프리와 함께한 24시간

레프리는 코스 셋업, 룰 적용 등 로프 안 모든 일 관장

첫조보다 2시간 먼저 출근, 막조보다 2시간 늦게 퇴근

대회 이어지다 보면 4~5주 동안 집에 못 들어가기도

코스 셋업만 해도 1만보 이상 걸어…강한 체력 필수

혹시 실수할까 긴장…다양한 시나리오 검토하며 토의

군산CC 오픈에 참여한 경기위원. 이진원 위원(왼쪽부터), 백승열 위원, 천철호 팀장, 권청원 경기위원장, 구민석 운영국장, 최병복 팀장, 송동호 위원, 차진회 위원, 김성열 위원. 사진=김세영 기자




흔히 골프는 ‘심판이 없는 스포츠’라고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골프 규칙에 따르면 플레이어는 룰을 위반했을 경우 스스로 페널티를 적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모든 플레이어가 ‘규칙 박사’는 아니다. 더구나 골프 룰은 복잡하다. 그러니 경기위원(레프리)이 필요하다. 골프의 발상지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디 오픈의 경우 선수들과 함께 걸으며 그때그때 룰 해석을 돕는 ‘워킹 레프리’가 모든 조에 따라 붙는다.

경기위원은 어떤 일을 할까.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상반기 마지막 대회였던 군산CC 오픈에서 경기위원들과 24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코스에서 보내고 있었으며 훨씬 더 많은 업무를 하고 있었다.

TV 시청도 ‘일’…생리현상 해결은 광고 시간에

KPGA 투어에서는 현재 총 57명의 경기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권청원 경기위원장을 중심으로 그 아래 7명의 팀장이 있고, 나머지 49명의 위원이 있다. 1부 투어엔 10명의 경기위원이 배정된다. 나머지 위원들은 5개 지역에서 활동한다. 여기에 대한골프협회(KGA)에서 규칙을 담당하다 올 시즌부터 KPGA에 합류한 구민석 운영국장이 힘을 보태고 있다.

대회 1라운드 낮 12시부터 시작된 레프리 체험의 첫 장소는 야외가 아닌 경기위원장과 운영국장이 주로 머무는 대회 본부로 정해졌다. 본부에서 하는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의외로 ‘TV 시청’이었다. 중계방송을 모니터하면서 대회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보는 것이다. 방송에서는 코멘트 하나하나가 중요하기 때문에 중계진과의 원활한 소통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부분은 현재 구민석 운영국장이 맡고 있다.

중계방송을 보면서 모니터하고 있는 구민석 운영국장.


구 국장은 “외국의 경우 룰 코멘테이터(해설자)가 중계 박스 안에 들어가 규칙과 경기 전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는데 아직 국내에선 인력 등의 문제로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있다”며 “룰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가 발생하면 중계진에게 카톡으로 신속하게 내용을 전달한다”고 귀띔했다.

TV 시청 중 A 선수가 두 번째 샷을 OB 구역으로 보내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구 국장은 곧바로 KPGA 홈페이지 리더보드를 살펴봤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A 선수의 샷이 러프로 갔다는 잘못된 정보가 올라와 있었다. 구 국장은 곧바로 무전을 날려 오류를 수정했다. 구 국장은 “화면에 중요한 장면이 잡히면 혹시나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집중해서 봐야 한다”고 했다. 광고 시간이 되자 구 국장은 “이때가 쉬는 시간이다. 생리현상도 참았다 지금 해결해야 한다”며 밖으로 나갔다.

플레이 진행상황은 색으로 표시된다. 주황색 계열은 제시간, 블루 계열은 늦었다는 의미다.


슬로 플레이와의 전쟁…EST 도입으로 10분 이상 단축

최근 전 세계 프로골프 투어들은 슬로 플레이와 전쟁 중이다. 느린 경기 진행은 팬들을 지루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동료 선수들의 경기력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KPGA 투어는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 올 시즌부터 ‘EST(Excessive Shot Time; 과도한 샷 시간)’ 규정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선수나 그룹이 홀 플레이 허용 시간을 초과할 때에만 경고, 모니터링, 공식 계시, 배드 타임의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이제는 첫 스트로크를 하는 데에 70초, 다른 스트로크를 하는 데 60초 이상 걸리는 선수가 있으면 곧바로 집중 감시와 시간 계측에 착수한다. 느린 선수를 미리 관리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EST 도입으로 시즌 첫 대회에 비해 경기 시간은 10분 이상 단축됐다고 한다.

홀마다 플레이 시간도 정해져 있다. 코스 길이, 난이도, 홀 이동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보통 파4 홀에는 15~16분, 파3 홀은 13분 내외, 파5 홀에는 대략 18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를 모두 합산해 18홀 ‘타임 파’가 결정된다. 군산CC 오픈 1라운드 타임 파는 4시간 39분이었다.

경기위원들의 태블릿PC에는 각 조 진행 상황이 시간과 함께 색으로 표시된다. 주어진 시간 안에 홀을 마치면 주황색, 플레이가 느리면 블루 계열로 표시된다. 이 두 가지 색이 진할수록 속도가 빠르거나 느리다는 의미다.

시간이 흐르면서 파5의 16번 홀부터 블루 계열로 표시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구 국장은 “오후 들어 16번 홀이 뒤바람으로 바뀌었다. 2온을 시도하는 선수들이 늘면서 정체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며 “이럴 때 뒤에 있는 선수들을 재촉하면 병목 현상이 더욱 심화되기 때문에 그냥 흐름대로 놔둔다”고 했다.

권청원(오른쪽) 경기위원장과 천철호 팀장이 코스 셋업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


날씨와 코스 컨디션 따라 티 마커와 핀 위치 결정

대회장에는 기상업체 직원이 상주한다. 골프는 날씨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KPGA는 오전 5시 30분과 오후 2시에 두 차례 강수, 기온, 풍속, 풍향, 낙뢰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는다. 경기위원회는 기상 정보를 기초로 대회 흐름을 컨트롤하고 다음 날 코스 셋업에도 참고한다. 예를 들어 맞바람이 불면 선수들의 거리 부담이 늘거나 사실상 파 온이 불가능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티 마커나 핀의 위치를 조정한다. 첫날 3번과 10번 홀(이상 파4)은 핀 위치를 앞으로 옮겼다.

이날 오후에는 다음 날 아침 안개가 옅게 끼겠지만 시정(물체를 볼 수 있는 최대 거리) 500m, 바람은 남서 방향에서 불다가 오후 들어 남풍으로 바뀔 것으로 예보됐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자 경기위원장과 군산CC의 코스 관리자 등이 모여 다음날 코스 셋업에 관한 회의를 시작했다. 직접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의 의견도 반영한다. 권 위원장은 “대회를 치르다 보면 경기위원회, 선수, 골프장의 의견이 서로 상충할 때가 많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잘 조율하느냐가 관건이다”라고 했다.

옥태훈의 룰 적용을 도와주고 있는 최병복 팀장.


“바쁘다 바빠”…10분에 한 번꼴로 레프리 호출

중계 카메라에 잡히는 모습 외에도 선수들은 경기위원을 수시로 호출한다. 체크를 해보니 대략 10분에 한 번꼴로 경기위원을 찾았다. 수리지, 움직일 수 없는 장해물, 일시적으로 고인 물 등 비정상적인 코스 상태에서의 구제 여부, 구제 기준점과 구제 구역 위치 등을 문의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일종의 ‘보험’으로 경기위원을 호출하는 선수들도 있다. 이날 16번 홀에서 옥태훈은 티샷을 페어웨이 왼쪽 연못에 빠트린 뒤 경기위원을 불렀다. 포어 캐디가 볼이 물에 들어간 지점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고 페널티 구제 절차가 까다롭지 않았지만, 혹시 모를 규칙 위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경기위원들은 자신들이 내린 룰 판정 내용을 곧바로 태블릿PC에 저장했다. 구 국장은 “현장의 ‘살아 있는 데이터’를 취합해 룰 교육 등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코스 셋업은 깜깜한 새벽부터 시작된다.


카트고 문을 열고 있는 천철호 팀장.


골프장 직원보다 먼저 출근하다

둘째 날 새벽 4시 10분. 골프장 일반 직원들은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그 시각, 어둠을 헤치고 천철호 팀장의 차가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는 익숙한 듯 카트 보관소로 가더니 문을 열고 자신의 카트를 꺼냈다. 뒤이어 최병복 팀장도 도착했다. 코스 관리 직원들은 이제 막 9번과 18번 홀 그린 정비를 하고 있었다.



천 팀장과 최 팀장은 베테랑 경기위원이다. 20여 년 경력의 천 팀장은 규칙에 관심이 많은 후배들을 경기위원으로 이끄는 등 규칙 보급에 큰 힘을 썼다. 최 팀장은 ‘연장전의 사나이’다. 최종일 연장전이 벌어지면 최 팀장이 전담 마크를 해서다. 그만큼 경험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스팀프미터를 이용해 그린 스피드를 측정하는 모습.


두 고참들은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그린 상태를 점검했다. 인코스와 아웃코스 3곳씩 총 6개 그린을 점검한 뒤 첫 조 출발 최소 30분 전에 그날 그린의 스피드, 경도, 습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했다. 이날 첫 조 출발시간은 6시 50분이었다.

18번 홀 그린에 도착한 천 팀장과 최 팀장은 플래시를 비춰가면서 “여기쯤인데”라며 뭔가를 찾았다. 매일 동일한 지점에서 그린 스피드를 측정하기 위해 비교적 평탄한 곳을 골라 표시해 둔다고 했다. 측정 위치를 찾은 천 팀장과 최 팀장은 스팀프미터를 이용해 양방향에서 볼을 3개씩 굴려본 뒤 평균값을 냈다.

선수들이 그린 스피드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게 그린의 단단함을 보여주는 경도다. 경도 측정기는 흡사 자전거 타이어 공기주입기처럼 생겼다. 그린에 내려놓은 뒤 손잡이를 끝까지 들어 올렸다 놓으면 끝이 둥근 쇠막대가 지면을 때린다. 이때 지면이 얼마나 눌렸느냐(인치)로 경도를 파악한다. 그린이 단단할수록 숫자가 작다. 프로 대회에서 경도 0.20~0.24인치는 단단함, 0.24~0.28인치는 보통, 0.28~0.32인치는 무름으로 본다.

최 팀장은 “경도가 구역별로 균일한지 살펴보기 위해 그린을 9분할 해서 측정한다”면서 “핀 주변은 별도로 측정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 사이 천 팀장은 그린 습도를 측정하고 있었다. 그린 스피드는 같더라도 지면이 무르고 습도가 높으면 볼을 잘 받아주고, 지면이 단단하면서 습도가 낮으면 볼의 런은 많이 발생한다.

최병복(오른쪽) 팀장과 천천호 팀장이 그린 경도를 측정하고 있다.


골프장 코스관리 직원도 동행하며 상태를 살폈다. 이왕석 군산CC 코스관리팀 총괄이사는 “러프는 대회 3개월 전, 페어웨이는 1개월 전부터 관리한다”며 “하루에 1mm씩 조정해 가며 밀도 유지 등의 작업을 한다”고 했다. 군산CC 코스 컨설팅을 하는 업체인 그린마스타의 이덕호 대표는 “계절에 따라 잔디 뿌리 깊이가 다르다. 그에 따라 물을 주는 시간이나 양, 습도를 조절한다. 그린 경사에 따라 물이 지면에 흡수되는 양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때론 손으로 호스를 끌고 다니면서 물을 주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이날 그린 스피드는 3.8m로 약간 빠른 편이었고, 그린 경도는 0.25~0.26인치로 보통, 그린 습도 역시 20~21%로 보통 수준이었다.

“기왕이면 깨끗하면 좋지 않겠어요”

인코스 점검을 마칠 때쯤 아웃코스에서는 차진회 경기위원이 한창 티 마커와 핀 위치를 셋업하고 있었다. 올해 60세지만 군살 없고 단단한 체구의 차 위원은 여전히 ‘선수에 대한 열망’도 크다. 올해 그랜드 시니어 투어에 데뷔했다. 그는 “일주일 전 시합을 치르고 왔다”고 했다.

차 위원은 티잉 구역에 올라 줄자를 길게 빼 좌우 너비를 측정한 다음 티 마커의 방향이 올바른지 꼼꼼히 살펴봤다. 차 위원은 “티잉 구역의 좌우 너비는 6~7야드 정도로 설정한다”며 “티 마커는 정렬에 영향을 주는 만큼 랜딩 존을 똑바로 향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차 위원이 매번 티 마커를 놓기 전 장갑 낀 손으로 티 마커를 쓱쓱 닦아주는 모습이었다. 그는 “기왕 깨끗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티 마커를 놓기 전 닦고 있는 차진회 위원.


대회 때 캐디나 선수들이 광고판부터 티잉 구역 맨 앞까지 발걸음으로 거리를 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야디지북 거리가 광고판 앞에 찍혀 있는 점(BOT; Bottom of the Teeing Area)에서부터 시작해서다. 보통 티잉 구역은 선수들 스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광고판과 최소 3~4야드 간격을 둔다. 티잉 구역은 전체를 4등분 해서 1~4라운드 동안 나눠서 사용한다. 18홀 전장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디봇 없는 깨끗한 티잉 구역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파3 홀 티잉 구역은 핀 위치에 따라 좌우로 이동하기도 한다. 핀이 그린 좌측에 꽂혀 있다면 티잉 구역은 약간 오른쪽에 설정하는 것이다. 반대로 우측 핀일 때는 좌측에서 공략하도록 한다. 핀과 티 마커 위치가 같은 방향이면 구질에 따라 공략이 난감한 상황도 발생하는데, 이를 방지하고 보다 합리적인 루트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홀 주변 경사를 파악하기 위해 퍼팅을 하고 있다.


레프리 마음을 읽는 자가 승리한다

그린에서는 코스 관리자가 미리 뚫어 놓은 홀 위치를 확인한 뒤 다음 날 핀 위치를 점검하고 마킹한다. 홀 위치는 2개의 숫자와 알파벳으로 표기한다. 예를 들어 ‘26 6R’이라면 그린 입구 기준점부터 뒤로 26야드, 그 지점의 그린 우측에서부터 6야드 교차점에 홀이 있다는 의미다. 차 위원은 “간혹 코스 관리자가 홀 좌우 위치를 착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꼼꼼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

홀의 정확한 좌표를 위해 모든 그린에는 입구와 뒤쪽 끝에 2개의 기준점이 있고 붉은색 페인트로 표시한다. 티샷의 페어웨이 랜딩 존에서 두 번째 샷을 할 때(파4 홀 기준) 그린을 좌우로 양분하는 가상의 선과 그린 맨 아래 수평선이 만나는 지점이 입구 기준점이고, 그린 중앙의 가상 선이 그린 맨 위 수평선과 만나는 교차점이 끝 기준점이다. 입구와 끝 기준점까지의 세로 길이를 그린 깊이(Green Depth)라고 한다.

그린 형태(벙커가 그린 안쪽으로 들어온 경우)에 따라 때로는 입구 기준점이 벙커 내에 존재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벙커 안에 마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린 중앙 가상의 선이 그린과 만나는 지점에 입구 기준점 표시를 한다. 그런 후 실제 기준점까지의 거리를 써놓는다. 예를 들어 ‘+11y’라면 표시 지점이 벙커 내부 등의 실제 기준점으로부터 11야드 앞쪽에 있다는 뜻이다. 군산CC 토너먼트 코스 중에서는 1번, 7번, 8번, 13번 홀 등이 이런 경우에 해당됐다.

그린 입구 기준점이 실제보다 11야드 앞에 있다는 표시. 기준점이 벙커나 물 등에 위치할 때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차 위원은 2단 그린에서 퍼팅을 하거나 경사 위로 볼을 굴려 얼마나 다시 내려오는지도 테스트했다. “2단 그린으로 볼이 넘어갔더라도 정교한 힘 조절로 퍼팅을 했다면 홀 주변에서 볼이 멈춰야 한다”는 게 차 위원의 설명이었다. 이어 “경험 많은 선수들은 그린을 보면 날짜별로 어디에 핀이 꽂힐지 예측한다”며 “레프리의 마음을 읽어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했다.

파3인 8번 홀 그린. 차 위원은 약간 기울어지게 꽂힌 깃대를 보더니 홀을 뚫었던 코스 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막 퇴근할 참이었다는 담당자는 돌아와 홀 바닥을 평평하게 수정했다. 차 위원은 “대회 때 선수들은 무척 예민하다. 깃대 맞고 들어갈 볼이 튕겨 나왔다며 항의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웃코스 셋업을 맡은 백승열 경기위원은 “아침에 셋업만 해도 보통 1만 2000보 이상을 걷는다”며 “경기위원을 하려면 컨디션 조절이나 체력 관리도 잘해야 한다”고 했다. 약 1시간 30분의 그린 점검과 약 3시간에 걸친 코스 셋업을 마친 경기위원들은 또다시 각자 맡은 구역으로 뚜껑 없는 카트인 ‘버기’를 타고 이동했다.

첫날 1라운드 후 회의를 하고 있는 경기위원들.


실수를 했던 레프리와 실수를 할 레프리

최병복 팀장은 상황이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13~16번 홀을 담당하고 있었다. 최 팀장은 “오랜 기간 봐왔던 선수들과는 가벼운 대화도 나눈다”며 “경기위원들이 대부분 선수 출신이다 보니 과거엔 후배 선수들에게 권위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은 선수들에게 최대한 부드럽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경기위원은 첫 조보다 최소 2시간 먼저 나와서 마지막 조보다 최소 2시간 늦게 들어간다. 힘들지만 선수들에게 도움이 돼서 그들이 좋은 플레이를 했을 때 보람을 느낀다. 지금까지 내가 위치를 정한 홀에서 홀인원이 8개나 나왔다”며 환하게 웃기도 했다.

아무리 평소 규칙을 잘 알고 있더라도 현장에서는 순간적인 착각으로 간혹 실수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레프리는 ‘실수를 했던 레프리와 실수를 할 레프리’ 두 가지로 나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백승열 경기위원은 “TV 중계가 되는 홀에서는 혹시 실수를 할까 봐 긴장이 되기도 한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경기위원들은 답사나 회의 때 각 홀에서 발생할 다양한 시나리오를 사전에 충분히 토의한다”고 했다.

천철호 팀장은 “시합과 월요예선이 연달아 있어 몇 주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면서 “일반 직장인처럼 근무시간 따지거나 돈벌이로 생각하면 이 일 못 한다. 명예와 자부심, 그리고 봉사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2라운드 점심이 되면서 24시간의 레프리 체험을 마쳤다. 그 일주일 후 챔피언스 투어 KPGA 시니어 선수권에서 경기위원들을 다시 만났다. 권청원 경기위원장은 “아직도 집에 못 들어갔다. 다음 주에는 회원 선발전이 있다. 그것까지 마친 뒤에나 집에 갈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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