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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비만치료제의 역설

■박준호 바이오부 차장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한 친구가 급격히 살이 쪄서 고민이라는 말을 꺼냈다. 외양만 보면 비만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기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의아해했다. 그러자 그는 “‘위고비’를 맞고 효과를 보고 있다”며 “시장 전망도 좋을 것 같아서 비만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 많이 투자했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 업계의 핫이슈인 비만치료제가 얼마나 대중에 가까이 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서울 종로5가 일대 이른바 ‘성지’로 불리는 도매약국은 물론 동네 약국도 ‘위고비’ ‘마운자로’ 재고가 있다는 안내문을 붙여놓는다. 병의원도 진료과를 막론하고 비만치료제 처방이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기자는 건강검진 전문 병원에서도 이러한 안내를 접했다.

가장 열광하는 곳은 단연 증시다. 비만 신약 후보 물질을 전임상 혹은 임상 초기 단계로 개발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만 해도 이른바 ‘비만 테마주’로 분류돼 주가가 뛰었다. 최근 임상 3상을 완료한 비만약 ‘에페글레나타이드’의 품목허가를 준비 중인 한미약품은 주가가 연초 대비 69.84% 올랐다. 디앤디파마텍은 먹는 비만약 후보 물질을 기술이전했던 해외 업체가 글로벌 빅파마에 인수되면서 급격히 주목을 받아 올 초와 비교해 무려 594.09%나 급등했다.

주가만 보면 비만치료제 개발사들의 향후 전망은 장밋빛이지만 ‘에페글레나타이드’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임상 초기 단계다. 미국바이오협회가 2011~2020년 임상 단계를 거친 후보 물질 1만 2728개를 조사한 결과 임상 1상에서 품목허가까지 성공률은 불과 7.9%였다. 신약 후보 물질이 실제 제품화되기까지도 10~15년을 기다려야 한다. 업체들의 주가를 끌어올린 신약 후보 물질 열 개 중 한 개조차 실제 의약품으로 거듭난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아직 개발되지도 않은 비만 신약 개발 업체들의 주가를 신경 쓰기 전에 이미 출시된 치료제가 정말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쓰이고 있는지부터 챙겨보는 게 우선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9월 한 달 위고비와 마운자로의 처방량은 총 15만 5000여 건으로 연간 187만 건으로 추산된다. 반면 비만치료제 처방 대상인 체질량지수(BMI) 30 이상 비만 인구는 115만 명에 불과하다. 미용 목적의 오남용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들 치료제는 비급여라 가격이 비싸지만 고도비만 환자 상당수는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이라 치료제를 구할 엄두를 못 낸다. 김신곤 고대안암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최근 제4회 서경 바이오메디컬포럼에서 “한국에서는 비만치료제가 필요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만치료제는 당뇨·비만 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 신약이다. 시장에서도 열광할 이유가 충분하다. 다만 지금의 열광이 비만치료제가 필요한 이들에게 안전하게 쓰이는 사회적 가치를 후순위에 밀어놓은 모양새라 씁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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