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은 “유네스코가 종묘 앞 고층 건물 논란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왔다”고 17일 밝혔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에도 이를 전했다고 덧붙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명의로 주유네스코 대한민국 대표부를 거쳐 15일에 전달된 문서는 “세운4구역의 고층 건물 개발로 인해 세계유산인 종묘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다”며 “센터와 자문기구의 (세계유산영향평가 관련) 긍정적인 검토가 끝날 때까지 서울시의 세운4구역 관련 사업 승인을 중지할 것”을 적시했다고 국가유산청은 전했다. 유네스코는 결과를 한달 안에 회신해 달라고 요청했다. 유네스코는 논란의 ‘세운4구역’ 외에 ‘세운2구역’에도 관심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월 말 서울시의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 변경 고시를 통해 촉발된 종묘 앞 고층 빌딩 논란에 유네스코까지 우려를 표시하며 본격 ‘참전’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이날 “서울시가 세계유산영향평가라는 절차를 통해 종묘의 유산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주민들의 불편을 조속히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을 도모해주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개발 계획 취지와 문화체육관광부·국가유산청의 반대 이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취소 가능성 등 종묘 앞 개발을 둘러싼 논란들을 정리했다.
◇종묘앞 고층건물 왜 지으려 하나=종묘 앞에는 세운상가가 있고 인근에 저층 건물들이 산재해 있다. 서울시는 이 지역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해 재개발을 추진해왔다. 고층 빌딩 개발을 원하는 토지주와 종묘 앞 저층 개발을 원하는 정부의 타협안으로 나온 것이 세운상가를 리모델링하고 인근 세운4구역은 최고 높이 72m로 개발한다는 결정이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때인 2018년이었다. 이후 정권이 교체되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재개발 방향이 바뀌었다. 토지주들의 의견을 적극 받아들여 세운상가를 철거해 공원화하고 인근 세운4구역에 대해서는 최고 높이 145m의 고층 개발이 추진됐다. 서울시는 “남산에서 종묘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녹지축과 좌우로 형성되는 입체적인 도심은 종묘 주변을 더욱 돋보이게 할 것”이라며 “정밀한 시뮬레이션과 종묘와 조화되는 건축 디자인 도입을 통해 경관 훼손이 없음을 이미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문체부·국가유산청은 왜 반대하나=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인근 지역에 일부 제한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세계유산 지역 내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 건물 건축 허가는 없을 것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2018년 확정된 세운4구역 사업시행인가(최고 높이 72m)는 10여 년에 걸쳐 국가유산청·서울시 등 관련 기관이 합의한 결과인데 서울시가 올해 10월 일방적으로 변경했다고 국가유산청은 지적한다. 서울시의 변경안이 종묘의 가치를 훼손할지, 아니면 도움이 될지는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주장할 게 아니라 유네스코의 권고대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거쳐 입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적인 쟁점은=현재 최대 쟁점은 세계유산영향평가다. 서울시와 토지주들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할 경우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사업이 늦춰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영향평가 결과가 서울시에 유리하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현행 법률에 영향평가에 대한 근거가 없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11월 제정된 세계유산법은 세계유산 인근 개발에 대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세부적인 조항을 규정한 시행령(대통령령)이 없어 강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반면 국가유산청은 법이 아닌 유네스코 권고에 따른 영향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종묘 세계유산 취소 가능성은=국가유산청은 서울시의 새 계획대로 최고 높이 145m의 고층 건물이 종묘 앞에 지어질 경우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가 박탈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됐다가 2009년 4차선 교량을 건설했다는 이유로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세계유산에서 탈락한 사례 등이 있다. 다만 종묘가 세계유산에서 탈락하는 극단적인 사례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는 과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종묘가 대한민국의 첫 세계유산이고 그 자체가 국가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세계유산 탈락을 가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원만한 합의는 어떻게=국가유산청은 서울시, 문체부, 국가유산청 등 관계 기관이 참여하는 조정 회의 구성을 제안했다. 서울시도 대화로 해결하자고 거듭 밝혀 왔다. 다만 양측의 전제 조건이 다르다.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영향평가 절차를 통해 종묘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자는 것이고, 서울시는 시 자체 평가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법 시행령을 내년 초까지 제정해 145m 고층 빌딩 건축 계획에 대해 강제적으로 영향평가를 받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정치 지형의 변화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에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계획안 변경을 주도했으나 이재명 정부에서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서울시의 계획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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