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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요람을 가다] 한국기계연구원

시장에 기초한 수요자 중심의 연구개발

기계(機械)의 의미는 무척이나 포괄적이다. 다수의 부품으로 구성된 것으로 일정한 운동에 의해 유용한 일을 하는 동적 장치라는 사전적 개념부터 그렇다. 일부에서는 에너지를 변환시키거나 전달하는 장치의 총칭으로도 사용한다.

그 만큼 영역을 한정하기가 어렵다. 지난 1976년 설립된 한국기계연구원의 연구개발도 이 같은 사전적 의미만큼이나 백화점식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사실 우주항공 분야의 한국항공우주 연구원, 해양선박 분야의 한국해양연구원도 기계연구원에서 분가(分家)해 나간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다.

기계연구원은 지난해까지 자기부상열차에 대한 연구에 주력해왔는데, 최근 철도기술연구원이 튜브 트레인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 업무가 중복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고 있다. 이 역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기계 분야의 광범위한 연구 영역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넓은 연구 영역은 그 만큼 중요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조선·철강·자동차·화학, 그리고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기계가 기반을 이루고 있지 않은 분야는 없다. 다만 각 산업의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눈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어 차세대 전차인 흑표에 장착되는 야간투시경용 부품이나 T-50 전투기에 들어가는 부품의 핵심 기술들은 기계연구원이 개발했지만 외부에서 이를 알기는 어렵다. 미국·일본·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선진국 들은 대부분 기계 강국이다.

스웨덴, 스위스와 같은 강소국(强小國)도 마찬가지. 이들 나라는 대부분 기계 산업의 비중이 전체 산업의 40%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의 기계 산업 비중은 28%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조선·자동차·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입지를 확보하고 있지만 이 같은 산업을 받혀주는 기계 분야는 예상 밖으로 취약하다는 것.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기계장비의 대외 의존도, 특히 일본 의존도가 높아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도 조만간 변할 조짐이다. 지난해 8월 취임한 대학 총장 출신의 이상천 원장이 기존의 백화점식 연구 영역은 물론 기계연구원의 운영에 이르기까지 전(全) 방위적 개혁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원장이 내세운 새로운 목표를 한마디로 말하면 시장에 기초한 수요자 중심의 연구개발에 주력하되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국가 산업의 미래를 창출하는 기계 분야의 초일류 브랜드를 육성하고 만성적인 대일(對日) 무역적자도 해소해 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프로세스를 통해 국내 기계 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는 것도 장기적 목표로 설정돼 있다. 현재 기계연구원이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초정밀 기계 및 부품, 플랜트 요소기술, 그리고 롤 투 롤(Roll TO Roll) 기술에 기초한 인쇄 전자회로 분야.

초정밀 기계 및 부품 개발은 대일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카드다. 현재 각종 산업용 장비에는 초정밀 펌프나 밸브 같은 초정밀 기계나 부품이 필요하지만 이들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산업용 장비를 생산하더라도 핵심 기계나 부품은 고가로 사들여 와야 한다.

기계연구원은 최근 국내 기계 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10대 기술을 선정했으며, 이중 가장 필수적인 5개 분야를 최종 선정했다. 여기에 포함된 것이 바로 초정밀 펌프와 밸브다. 그동안 이들 초정밀 기계나 부품이 국내에서 개발 되지 못한 이유는 기술개발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일본 등 선진국과 비교해 생산단가를 낮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계연구원은 기술개발을 통 해 외국산 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제품을 개발하는 한 편 제품 원가도 낮춰 외국산 제품과 경쟁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플랜트 요소기술 개발은 비(非) 정상적으로 성장해 온 국내 플랜트 산업의 빈 공간을 연구개발을 통해 메운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인쇄 전자회로란 전자회로를 종이 인쇄물 찍듯 찍어내는 것이다. 특히 기계연구원의 롤 투 롤 인쇄 전자회로 기술은 대량생산이 가능해 제조단가를 크게 낮추고 막대한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다.




국내 플랜트 산업은 지난해 500억 달러의 수출을 달성해 주력 산업의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이를 통한 외화가득률은 전체 매출의 15%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수출되는 플랜트에 장착되는 핵심 기계나 부품 을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국내 플랜트 산업은 단순 임가공이라는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 것. 국내 반도체 산업이 세계적인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지만 반도체 수출이 증가하는 것과 비례해 고가의 반도체 제조 장비를 수입해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기계연구원이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가 바로 롤 투 롤 기술에 기초한 인쇄 전자회로다. 인쇄 전자회로란 전자회로를 종이 인쇄물 찍듯 찍어내는 것. 기존에는 전자회로를 만들기 위해 회로기 판에 구리 등의 전도체를 입혀 필요한 회로 형태로 깎아 내거나 원하는 회로 모양의 구리배선을 부착했다.

메모리 반도체 칩 역시 이 같은 방식으로 생산되는데, 이 같은 방식은 생산단가가 무척 높다. 반면 인쇄 방식으로 전자회로를 제작하게 되면 특수종이나 필름에 전자잉크를 사용, 원하는 전자회로를 인쇄하기만 하면 된다. 기계연구원이 세계적 수준의 원천기술을 확보한 롤 투 롤 기술은 바로 이 같은 인쇄 전자회로 기술 중의 하나.

현재 독일과 일본에서도 인쇄 전자회로 기술을 개발중이만 이들 국가는 대부분 스탬프로 찍듯 찍어내는 방식이다. 반면 기계연구원의 롤 투 롤 기술은 신문을 제작하는 윤전기처럼 수십 개의 원통형 롤에 두루 마리 형태의 필름이 감겨 돌아가면서 전자회로를 인쇄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방식을 사용하면 대량생산이 가능해 제조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특히 이 방식을 사용하면 소형의 반도체 칩이 내장된 무선인식(RFID) 태그를 초저가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 껌 1개에도 RFID 태그를 부착할 수 있다.

기계연구원은 이들 3개 분야를 축으로 한 주력 연구개발 분야에 예산의 77%를 쏟아 부을 예정이다. 선택과 집중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선택과 집중을 하다보면 산업계의 요청에 따른 산업연계형 연구개발, 그리고 기초기술을 토대로 한 창의형 연구개발이 취약해질 우려가 있다.




기계연구원은 주력 연구개발 분야에 예산의 77%를 쏟아 부을 예정이다. 선택과 집중인 셈이다. 하지만 산업연계형 연구개발과 창의형 연구개발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업연계형 연구개발은 중소기업의 애로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며, 창의형 연구개발은 당장의 실용성은 낮아도 일명 ‘대박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야다


기계연구원은 이를 보완하기 위 해 각각 11%, 14%의 예산을 배정해 놓은 상태다. 산업연계형 연구개발은 중소기업의 애로기술을 개발하거나 설비개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다.

창의형 연구개발은 미래의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당장의 실용성은 낮아도 연구원 스스로가 연구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 연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 조원을 벌어들일 수 있는 ‘대박 기술’은 창의형 연구개발에서 나온다.

대덕=강재윤기자 hama9806@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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