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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매연 먹고 친환경 수소 뱉어내는 미생물

공장 굴뚝에서 배출되는 유해가스를 친환경에너지인 수소로 탈바꿈 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 이 꿈같은 일이 국내 연구팀에 의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한국해양연구원의 이정현 박사 연구팀이 남태평양의 한 심해 열수구(熱水口)에서 일산화탄소(CO)를 먹고 수소를 뱉어내는 초고온성 고세균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써모코커스 온누리누스 NA1’으로 명명된 이 고세균은 일산화탄소 외에도 개미산·전분·피루브산 등 다양한 먹이로 수소를 만들어내는데, 일산화탄소를 활용할 경우 수소 생산과 일산화탄소 저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획기적 바이오수소 생산기술이 탄생할 수 있을 전망이다.


수소는 고갈위기에 처해있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궁극의 미래 에너지로 불린다. 석유, 천연가스와 동일한 고효율 연료로서의 기능은 물론 소형 발전소라고 할 수 있는 연료전지를 통해 전기에너지와 열에너지로도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소 하나만 있으면 현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소는 또한 고갈의 우려가 없는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할 수 있는 무한 에너지며, 연소과정에서 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이기도 하다.

반면 가스 하이드레이트, 오일샌드, 태양 열, 풍력 등 여타 신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처럼 매장량이 한정돼 있거나 낮은 에너지 효율로 인해 활용성이 특정 분야에 제한돼 있다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수소의 제조·저장·이용기술 개발에 매년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이 같은 수소의 생산기술에 혁신적 전기가 마련됐다. 한국해양연구원 해양·극한생물분자유전체연구단의 이정현 박사 연구팀이 주인공. 이 박사 연구팀은 얼마 전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의 심해저에서 직접 찾아낸 초고온성 미생물을 활용, 고효율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핵심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써모코커스 온누리누스 NA1(이하 NA1)’으로 명명된 이 미생물은 80℃의 고온에서 생장하는 초고온성 고세균(archaebacteria)의 일종으로 전분, 개미산(formate), 피루브산(pyruvic acid), 일산화탄소(CO) 등을 먹고 대사과정에서 수소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연과 행운이 가져다 준 필연

이 박사 연구팀이 처음 NA1과 조우한 것은 지난 2002년. 미생물 유전체 활용기술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해양연구선 온누리호를 타고 극한 미생물을 탐사하던 중 파푸아뉴기니 해역의 수심 1,700m 열수구(熱水口)지대에서 NA1이 포함된 시료를 채취했던 것.

열수구란 열수분출구의 준말로 태양에너지가 닿지 못하는 심해에서 순수하게 지구의 에너지를 열수를 통해 분출해 내는 곳으로 이곳에 사는 미생물에게 에너지원이 된다. 이 박사 연구팀은 시료 채취 후 배양과 분리작업을 거쳐 NA1을 추출해 냈으며, 유전체 분석을 통해 NA1의 수소 생산 메커니즘도 완벽히 밝혀냈다. 국내 연구팀이 새로운 종류의 수소 생산 고세균을 찾아낸 것이나 분리에 성공한 것, 그리고 유전체 분석을 완료한 것 모두 이번이 최초다.

이 박사는 “사실 NA1의 발견과 분리는 열악한 상황이 가져다 준 우연과 행운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지금까지 발견된 열수구 고세균들은 모두 심해잠수정을 내려 보내 열수구 인근의 퇴적물을 채취한 후 분리해낸 것들이다.

그런데 이 박사 연구팀은 이 방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심해잠수정이 단 1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박사 연구팀은 다소 무모한(?) 방법을 떠올렸다. 온누리호 갑판 위에서 채취 장비를 내려 보내 시료를 퍼 올리는 것이 그 것.

당시 온누리호에 탑승했던 권개경 박사는 “열수구의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채취 장비가 1,700m를 내려가는 동안 해류에 떠밀릴 것이 자명했다”며 “연구팀조차 큰 기대를 걸 수 없었을 만큼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늘은 연구팀의 편이었다.

5번의 시도 만에 채취 장비가 거짓말처럼 정확한 목표지점에 안착한 것. 그리고 그렇게 채 취한 시료 속에 지금껏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NA1이 숨어 있었다. 이는 바람이 부는 2층 건물 옥상에서 실을 늘어뜨려 지상에 놓인 바늘귀를 꿴 것과도 같은 기적적인 일이었다.

시료 채취 후에도 행운은 이어졌다. 대개 초고온성 열수구 고세균들은 온도가 낮아지거나 산소가 공급되면 죽기 때문에 시료가 갑판으로 회수되는 동안 사멸될 개연성이 높은데, NA1이 이를 꿋꿋이 버텨낸 것이다. 게다가 정확한 조건하에서만 가능한 분리작업 또한 별다른 문제없이 순조롭게 이뤄졌다.

물론 이 행운들은 그만큼 사전준비가 철저했음을 말해주는 반증이겠지만 연구팀의 팀원들 스스로도 놀라운 결과라는 점만은 부인하지 않는다.

8종의 수소생산 시스템 보유

이를 감안하면 이 박사 연구팀이 처음 NA1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을 때 일부 연구자들로부터 진위를 의심받았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 박사는 “심해잠수정 하나 없는 국가에서 열수구 고세균을 분리해 냈다는 것을 누구도 쉽사리 믿지 못했다”며 “지금 돌이켜 봐도 미스터리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되는 법. NA1은 이 박사 연구팀에 의해 수소생산 매체로서 놀라운 가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NA1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무려 8개의 수소화 효소군(hydrogenase cluster)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 수소화 효소군이란 수소분자의 출입에 관계된 산화환원 반응의 촉매 역할을 하는 효소의 총칭으로서 보통 수개에서 십 수 개의 소단위 분자들로 이루어진 클러스터 형태를 띠고 있다.

쉽게 말해 NA1에는 대사과정에서 수소를 생산 또는 흡수하는 시스템이 8개나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는 현재 확인된 고세균 중 가장 많은 것이며, 기존의 다른 미생물과 비교해도 최소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이 때문에 NA1을 바이오수소 생산에 활용하면 단위당 수소추출 량을 크게 높일 수 있게 된다.

수소화 효소군이 다양한 만큼 이를 작동시킬 수 있는 먹이도 전분, 개미산, 피루브산, 일산화탄소 등 4종이나 된다. 이 중 전분과 피루브산으로 촉발되는 수소화 효소군은 일반 초고온성 고세균들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것이지만 개미산과 일산화탄소는 NA1만의 독창적 대사경로다.

그중에서도 이 박사 연구팀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단연 일산화탄소다. 일산화탄소는 화학공장 등에서 다량 생성되는 환경오염 물질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박사는 “일산화탄소를 먹이로 주고 NA1을 배양한다면 친환경 수소생산과 일산화탄소 저감이라는 일거양득의 효용성을 누릴 수 있다”며 “일산화탄소 배출 기업들에게 NA1은 일산화탄소 저감을 꾀하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쳇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는 셈이다. 경제성도 탁월했다. 이 박사 연구팀이 최근 한국에너지연구원, 한국기초과학연구원 등과 공동으로 수소생산 매체로서 NA1의 경제성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일산화탄소를 먹이로 사용할 경우 NA1을 이용한 수소 제조 단가는 1㎏당 0.8달러로 나타났다. 이는 현존하는 수소생산방법 중 가장 저렴한 수준이다.

4~5년 내 산업화 가능성 검증

NA1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CO₂)의 제거제로서 활용될 가능성도 내재 하고 있다. NA1의 유전정보에 CO₂ 고정에 관여하는 루비스코(RuBisCO)라는 효소 체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양한 능력과 가치를 확인한 이 박사 연구팀은 지금까지 20여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고, 관련 특허도 20여개나 출원했다. 이로 인해 NA1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 박사는 “최근 국내외 연구자들로부터 NA1의 분양 요청을 자주 받고 있다”며 “지금은 선도 기술 확보를 위해 이 요청들을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NA1의 이 같은 가치는 아직 가능성에 불과하다. 상업화가 이뤄지려면 앞으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일례로 NA1을 비롯한 초고온성·혐기성 미생물들은 상온성·호기성 미생물과 비교해 고온 유지, 무(無)산소 환경 제공 등 배양에 어려움이 많다. 한마디로 NA1의 이론적 수소생산 효율 은 높지만 단위 부피당 개체수가 적어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NA1의 배양기술은 1ℓ당 100㎎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 최소한 10~20g 수준으로 높여야 실질적 인 생산효율 확인이 가능하다.

특히 이 이 박사 연구팀의 기대처럼 상업성을 갖추려면 현재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값 비싼 고순도 일산화탄소가 아닌 공장 굴뚝에 서 포집한 저순도 일산화탄소로도 높은 생산 효율이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NA1의 가치는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이 박사 연구팀은 향후 NA1의 수소생산 최적화 조건, 유전자 조절 기작 등에 대한 후속연구를 진행해 상업적 가치를 증명할 계획이다.

올해는 첫 단계로 NA1의 발효조를 1~2 ℓ규모로 스케일 업해 최적의 발효환경을 찾아낼 예정이다. 이 박사 연구팀에 따르면 발효조의 크기가 200ℓ가 돼야 상업적 생산 가능성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유전공학기술을 적용, NA1의 수소 생산효율 극대화 및 품종개량을 꾀하기 위해 써모코커스 고세균의 대사공학(metabolic engineering) 원천기술을 보유한 일본 도쿄 대학의 이마나카 박사 연구팀과 협력연구를 추진 중에 있다.

이 박사는 “이마나카 박사 연구팀에 더해 D.퍼멘탄스라는 수소생산 고세균을 세계 최초로 분리해 낸 러시아과학아카데미(RAS) 의 앨리자베타 박사 연구팀과도 공동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4~5년 내 NA1의 상업성을 확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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