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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실종과 인류의 악몽

지구촌 곳곳에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이 같은 꿀벌의 실종 요인으로 유전자 조작 작물, 농약, 병원균, 전자기파, 지구온난화 등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지만 딱 부러진 해답을 찾기는 힘든 상태다.

다만 꿀벌 임대사업, 즉 가루받이를 통한 수익을 위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이동 양봉이 꿀벌의 생활력 전반을 약화시키고 이 와중에 유전자 조작 작물 등 현대문명의 폐해가 겹치면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만일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열매를 사용해 만든 모든 식품을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꿀벌이 멸종하면 4년 내 인류도 멸종한다는 격언을 따르지 않더라도 인류가 악몽을 꾸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요즘 야외에서, 특히 꽃이 만발한 들판에서 꿀벌의 모습을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애를 써도 근래 들어 꿀벌 특유의 앵앵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면 이는 필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의 생존은 큰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꿀벌의 실종은 곧 가루받이의 불능을 뜻하며, 이는 곧 농업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꿀벌 실종

지난 2006년 하반기. 북미와 유럽의 양봉 농가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났더니 양봉농가가 보유한 벌집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비어버린 것. 꿀벌이 벌집 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면 그나마 덜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벌집 안에는 꿀벌의 시체도 없었다.

꿀벌이 사라진 벌집에는 여왕벌과 유충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게다가 꿀벌의 주식인 꿀과 꽃가루도 그대로 있었다. 일반적으로 꿀벌은 유충이 모두 성체로 변태하지 않으면 벌집을 버리지 않는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꿀벌의 갑작스런 실종은 미스터리에 가까운 것이다. 이처럼 북미와 유럽의 양봉농가는 보유한 꿀벌의 3분의 2가 사라지는 등 갑작스러운 개체 수 감소로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꿀벌의 실종을 군집붕괴현상(CCD) 또는 집단붕괴증후군이라고 부른다. 구체적인 피해사례를 보면 우선 미국의 24개 주와 캐나다 일부에서 1건 이상의 군집붕괴현상이 발생했다.

미국 농무부가 지난해 1,500개 양봉농가의 20%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36%가 군집붕괴현상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07년에 비해 11%, 그리고 2006년에 비해서는 40%가 늘어난 것이다.

유럽의 경우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스페인, 그리스, 슬로베니아, 네덜란드 등에서 꿀벌의 개체 수 감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이를 꿀벌판 메리 셀레스트호 사건이라고 부른다. 메리 셀레스트호는 지난 1872년 대서양으로 출항한 뒤 한 달 만에 아무도 승선하지 않은 채 발견된 유령선을 말한다. 이 같은 꿀벌의 갑작스러운 개체 수 감소 현상은 인도와 브라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꿀벌이 사라 지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 작물에 의한 영향 가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꿀벌의 실종 직전에는 보통 다음과 같은 징후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우선 꿀벌이 유충을 제대로 기르지 않는다. 그리고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는 꿀벌의 평균연령이 낮아진다. 또한 많은 양봉농가에서 꿀벌에게 투여하는 고당도 옥수수 시럽을 먹으려 들지 않는다.

이 3가지 가운데 마지막 징후가 꿀벌의 실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즉 꿀벌의 군집붕괴현상은 고당도 옥수수 시럽 제공에 따른 영양실조 때문이라는 것.

고당도 옥수수 시럽은 꿀벌이 꿀과 꽃가루를 구하기 힘든 지역에서도 계속 가루받이를 하고, 겨울에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인공 음식이다. 가격도 진짜 꿀의 10분의 1에 불과해 양봉농가에서 애용되고 있다. 하지만 꿀벌에게 있어 꿀과 고당도 옥수수 시럽의 영양분은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꿀의 70% 이상은 포도 당과 과당 등 단당류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외에도 많은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다. 비타민, 미네랄, 단백질이 그것. 또한 칼슘, 인, 철분, 아연, 구리 등의 무기질도 있다. 반면 고당도 옥수수 시럽은 55%의 과당과 45%의 포도당으로만 구성돼 있어 꿀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영양분이 거의 없는 상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벌어진 군집 붕괴현상의 경우 꿀벌이 사라지기 직전 심한 영양실조 상태를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영양상태가 우수하던 벌집의 꿀벌은 옆 벌집의 꿀벌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고당도 옥수수 시럽이 유전자 조작된 옥수수로 만들어졌을 경우 꿀벌에게 이중의 타격을 주게 되는 셈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유전자 조작 작물에는 흙에 사는 세균인 바실리우스 투린지엔 시스의 유전자가 들어있는데, 이 유전자는 살충효과가 있어 꿀벌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

하지만 고당도 옥수수 시럽이 군집붕괴 현상의 주요 원인이라면 고당도 옥수수 시럽을 먹인 벌집에서만 군집붕괴현상이 일어 나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벌집에서도 군집붕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현재로서는 유전자 조작 작물이 꿀벌에게 특별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없다. 게다가 유전자 조작 작물이 없는 유럽과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도 군집붕괴현상이 벌어지고 있어 이 같은 가설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살충제 등 농약에 의한 영향 가설

꿀벌의 군집붕괴현상을 초래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농약, 그 중에서도 인공 니코틴인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을 응용한 살충제 이미다클로프리드다. 이 살충제는 뉴런 사이 혹은 뉴런과 근육 사이에 신호를 주고받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수용체에 들러붙어 신경마비 증세를 일으킨다.

특히 이 살충제는 곤충에게만 유효하고 인간, 동물, 식물에게는 별다른 해를 미치지 않기 때문에 살충제의 기린아로 불리며 각광받아 왔다. 그만큼 오남용이 이루어졌을 공산이 크다는 것.

실제 이미다클로프리드가 뿌려진 농장에서 꿀을 채취하고 가루받이를 하던 꿀벌이 떼죽음을 당해 양봉업자들이 항의하는 일도 왕왕 있었다. 또한 치사량을 섭취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꿀벌의 학습능력이나 비행능력에 영향을 미쳐 군집붕괴현상과 비슷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다클로프리드가 꿀벌 군집 붕괴현상의 원인이라고 딱 부러지게 단정 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군집붕괴현상이 일어나는 장소는 매우 다양하며, 지역에 따라 이미다클로프리드 이외에 여러 가지 살충제가 살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농토는 수확을 늘리고, 병충해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가짓수의 농약이 뿌려진 결과 각종 농약 칵테일로 범벅이 된 상태다.

실제 펜실베이니아의 토양을 시료 삼아 진행된 실험에서는 무려 43가지의 농약 성분이 검출됐을 정도. 따라서 여러 종류의 농약이 어떤 비율로 섞여야 꿀벌에게 피해를 입히는지 과학적으로 규명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가루받이를 시키기 위해 트럭에 벌집을 싣고 여기저기를 오가는 일이 흔한데, 이때 여러 지역을 왕래하면서 다양한 농약을 접하게 된다. 또한 꿀벌은 다량의 꿀과 꽃가루를 벌집 안에 비축 해놓고 섭취하기 때문에 농약이 묻어있는 꿀과 꽃가루의 채집시기, 섭취시기, 그리고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 사이에 상당한 시간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만일 꿀벌이 섭취하는 먹이가 농약으로 오염됐다면 꿀보다는 꽃가루일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꽃가루는 꿀벌의 몸 밖에 매달려 운반되고, 꿀은 꿀벌의 몸속에 넣어져 운반된다. 이 때문에 꿀에 치사량의 농약이 들었다면 꿀벌이 벌집까지 가져가 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인공적인 것이든 자연적인 것이 든 독극물의 효력은 꿀벌의 성충보다 유충에게 더욱 확실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군집붕괴현상에서는 독극물에 약하고, 게다가 성충보다 꽃가루를 섭취하는 비율이 높은 유충이 오히려 남아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농약에 의한 군집붕괴현상 가설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일부에서는 꿀벌의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한 항생제 또는 꿀벌의 천적인 응애를 없애기 위해 투여된 응애 살충제를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이는 항생제와 응애 살충제를 쓰지 않는 유기농 양봉농가들이 비유기농 양봉농가 근처에 있음에도 군집붕괴현상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에 근거한다.

하지만 농약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양봉 농가마다 모두 똑같은 항생제와 응애 살충제를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군집붕괴현상을 몰고 오는지 과학적으로 밝히기 어렵다.

병원균에 의한 군집붕괴현상 가설

꿀벌의 군집붕괴현상 원인으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등의 병원균을 꼽는 연구자들도 있다. 응애, 즉 꿀벌에 기생하는 진드기의 일종이 전염시킨 각종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꿀벌의 면역체계를 약화시킴으로써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

실제 컬럼비아 대학의 W. 이언 리프킨 박사가 군집붕괴현상이 일어난 벌집에 남아 있던 꿀벌 시체를 조사해 본 결과 30개 시료 가운데 25개에서 이스라엘 급성마비 바이러스(IAPV)가 검출됐다. 또한 꿀벌의 소화기관을 파괴하는 노제마 병원균, 카슈미르 꿀벌 바이러스 등 꿀벌에 감염되는 여러 가지 병원균들이 비교적 많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군집붕괴현상이 일어났던 벌집에 방사선 살균처리를 한 후 다시 꿀벌을 살게 했더니 군집붕괴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병원균 가설은 한때 상당한 신빙성을 얻었다. 하지만 병원균 가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타당성을 잃게 됐다.

일반적으로 꿀벌의 군집이 병으로 죽어가기 시작하면 근처의 다른 건강한 군집에서 죽어가는 군집의 꿀을 뺏으러 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건강한 군집으로 병이 옮겨가는데, 군집붕괴현상에서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더구나 군집붕괴현상을 일으킨 모든 꿀벌의 군집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요 지표 병원균은 없다. 나라나 지역에 따라 군집붕괴현상을 일으킨 군집에서 발견되는 병원균은 모두 다르다는 것.

이에 따라 특정 병원균이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상당한 오류의 소지가 있는 셈이다. 전자기파나 지구온난화를 꿀벌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지난 2006년 독일 란다우 대학의 볼프강 하르스트와 요헨 쿤은 전자기파 노출이 꿀벌에 일으키는 행동변화를 알기 위해 벌집 속에 무선전화기를 놓고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무선전화기의 전자기파에 노출된 꿀벌은 다른 꿀벌에 비해 21% 정도 작은 벌집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전자기파의 원 인을 알아내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고 한다.

게다가 전자기파에 노출된 꿀벌을 잡아 벌집에서 800m 떨어진 곳에 풀어놓았더니 그렇지 않은 꿀벌에 비해 귀환시간은 2배나 길어졌고, 귀환하는 비율 역시 20%에 불과했다.

하지만 벌집 속에 무선전화기를 집어넣는 등 실험조건에 작위성이 강해 이 연구만으로 전자기파가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이라 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지구온난화로 인한 가뭄으로 꿀벌의 생활 여건이 악화되고, 식물이 말라죽기 때문이라는 주장 역시 그다지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놓쳐서는 안 돼

그렇다면 꿀벌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은 무엇이란 말일까. 일부에서는 나무만 보고 숲을 놓쳤기 때문에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을 탐구해 왔던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전문분야에서 본 시각으로만 문제에 접근했다. 그 결과 훨씬 포괄적이고 진실에 가까운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얘기다.

유전자 조작 작물, 농약, 병원균, 전자기파, 지구온난화 가운데 병원균을 제외하면 나머지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모두 인공적인 것이다. 즉 꿀벌의 군집붕괴현상은 현대 문명의 여러 가지 폐해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꿀벌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름 아닌 현대화된 농업 방식이다. 원래 꿀벌이 인간에게 사육된 것 자체가 농업을 위한 것이었다. 각종 영양분은 물론 풍미가 뛰어난 꿀을 얻을 수 있는데다 가루받 이를 통해 과실을 영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농업에도 효율성의 극대화, 즉 투자 대비 산출 효용의 극대화가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게 됐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기계로 하는 대규모 기업 형태의 농업이다. 광대한 땅에 빈틈없이 작물을 심어놓고 거름주기, 약치기, 수확 등을 사람이 일일이 하는 대신 기계로 대신해 버리는 것.

물론 농기계를 사는 데 들어가는 초기 투자비는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작물을 수확하게 됨으로써 단위면적당 또는 단위생산량 당 원가는 가내 수공업 형태의 농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지게 됐다.

당연히 가격경쟁력 면에서도 기존 방식의 농업과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사용하는 도구만 기계화되는 것이 아니다. 거름이나 농약도 과거의 친환경적인 천연제품 대신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화학제품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

그런 화학물질의 세례를 받은 농토가 얼마나 피폐해질지는 과학자들도 쉽사리 답을 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가급적 적은 자본으로 많은 농작물을 수확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특히 미국과 같이 광활한 대지를 갖고 있는 나라의 경우에는 "농토가 피폐해지면 딴 곳으로 옮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기계화를 통해 '저비용 고효율'로 처리하는 기업 형태의 농업도 몇 가지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충매(蟲媒) 방식으로 과실을 만들어내는 것, 즉 여러 작물의 가루받이다. 일반적으로 꽃은 꽃가루를 받아 과실을 맺는데, 바람을 통해 동류의 꽃에게 꽃가루를 전파하는 풍매(風媒) 방식보다는 꿀벌이나 나비 등의 수분 매개동물에게 꿀을 주고 대신 그들의 몸에 꽃가루를 묻혀 전파하는 충매 방식이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무인도에서 빈 병 여러 개에 편지를 집어 넣고 바다에 띄워 보낸 후 그 중 단 한 개만이라도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풍매 방식이라면 충매 방식은 전화로 택배회사 직원을 불러 목적지까지 최대한 신속 정확하게 문서나 물건을 보내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농작물은 충매 방식으로 가루받이를 해 씨앗이나 과일을 맺는다. 문제는 기업 형태의 농업을 위해 농작물을 너무 큰 땅에 너무 많이 심다보니 해당지역에 있는 꿀벌만 가지고서는 원하는 양만큼 가루받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이것을 모두 사람 손으로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인건비가 많이 들어 기업 형태의 농업에서 추구하는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꿀벌 임대사 업, 즉 이동 양봉이다. 이동 양봉이란 돈을 주고 여러 곳의 양봉업자들이 가진 꿀벌을 필요한 기간 동안 농장으로 불러 가루받이를 시키는 것이다.

이동 양봉, 꿀벌 실종에 중요 역할

이동 양봉은 꿀벌의 실종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모두 만들어 내는 온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최초로 꿀벌 임대사업을 시작한 양봉업자는 네파이 밀러. 그가 1908년 겨울부터 미국 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돈을 받고 농장주들의 가루받이를 해준 것이 시초였던 것.

이후 꿀벌 임대사업은 기업 형태의 농업을 추구하는 미국 농업의 특성상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양봉 업자들은 생산한 꿀보다 꿀벌 임대사업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정도였다. 그리고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도 이 같은 꿀벌 임대사업이 실시되고 있다.

미국의 양봉업자들이 꿀벌 임대사업을 위해 벌집을 가지고 이동하는 거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어느 양봉업자의 경우 벌집을 가지고 1월에는 아이다호에 서 캘리포니아로, 3월에는 워싱턴으로, 5월에는 노스다코타로, 11월에는 다시 아이다호로 돌아간다. 그리고 어떤 양봉업자는 플로리다를 출발해 뉴햄프셔, 텍사스를 거쳐 매년 1월에는 대표적인 기업 형태의 농업이 이루어지는 아몬드 가루받이를 위해 캘리포니아로 가기도 한다.

유럽이나 아시아의 양봉업자들도 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임대료를 쫓아서 벌집을 가지고 상당한 거리를 이동한다. 문제는 이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꿀벌이 이렇게 엄청난 장거리 이동을 소화해낼 수 없다는 것.

벌집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꿀벌은 정해진 곳에 둥지를 지어놓고 주변의 일정한 범위 내에서만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며 살아간다. 겨울이 돼 꿀과 꽃가루를 구할 수 없게 되면 벌집 속으로 들어가 저장해 둔 먹이를 먹으며 버틴다. 이렇게 정착생활을 하던 꿀벌에게 1년 내내 장거리 이동으로 혹사시키는 만큼 무리가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꿀벌의 체질에 맞지 않는 끊임없는 이동은 꿀벌의 체력과 생산력, 면역능력 등 꿀벌의 생활력 전반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꿀벌을 만나게 됨에 따라 타지 꿀벌이 가진 풍토병, 바이러스, 그리고 응애도 옮게 된다. 여러 가지 꽃의 꿀이나 꽃가루를 먹지 못하고 한 가지 작물의 꿀과 꽃가루만 먹게 되는 것도 문제다.

더욱이 기업 형태의 농업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살포된 각종 농약은 꿀벌의 체내로 고스란히 들어가게 된다. 사람들은 장기 이동으로 인해 떨어진 꿀벌의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 만든 고당도 옥수수 시럽, 그리고 병충해로부터 꿀벌을 지키기 위해 항생제를 먹인다. 하지만 무리한 이동을 제거하지 않은 채 증상만 없애는 대증요법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군집붕괴현상에는 여러 요인 작용

꿀벌의 군집붕괴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20여 년 전부터 미국 꿀벌의 생산력이나 개체 수는 조금씩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부 지각 있는 사람들은 이미 1960년대부터 꿀벌의 실종 위험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아무도 곧이듣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꿀벌의 군집은 사자, 원숭이, 사람 등 위계질서가 분명하고 집단 구성원 하나하나가 상당한 지능과 판단력을 가진 고등생물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뇌의 무게가 1㎎도 되지 않는 꿀벌의 개체가 금붕어보다 IQ가 높을 리 없고, 위계 질서에 따라 조직을 구성할 능력도 있을 수 없다.

꿀벌의 군집은 자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작동하는 일종의 시스템이며, 그 시스템을 이루는 꿀벌의 개체 사이에는 어떤 권력구조도 없다. 여왕벌도 꿀벌에게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할 뿐이다.

이렇게 자기 일만 하는 개체의 모임을 응집력 있는 군집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분업 체계와 의사소통망(網)이다. 꿀벌 군집에서는 획득한 모든 정보를 100% 전달 및 공유하고, 그 정보에 따라 군집을 위한 최적의 행동을 한다. 마치 한 사람 안에 있는 여러 세포가 일일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신체를 최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작동을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인간의 몸을 이루는 세포와 달리 꿀벌의 개체 사이에는 이렇다 할 물리적 연결고리가 없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오직 의사소통망뿐이다. 만약 이 의사 소통망이 어떤 이유로, 아니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약해지다가 어느 날 완전히 깨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날아갈 수 있는 꿀벌은 모두 흩어져 제 갈 길을 가 버리고 말 것이다. 이에 따라 벌집에는 움직일 수 없는 유충, 알, 여왕벌만 남게 된다. 물론 벌집을 떠난 꿀벌들이 미처 못 가져가고 남겨둔 꿀과 꽃 가루도 있을 것이지만.

사실 군집붕괴현상을 어떤 한 가지 요인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많은 모순을 드러낼 수 있다. 굳이 한 가지 요인으로 묶으라면 꿀벌에게 너무나 큰 짐을 지운 인간일 것이다. 인간으로부터 파생된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국 군집붕괴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꿀벌이 사라진 이후 겪게 될 악몽

꿀벌의 실종은 인간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몬드, 블루베리, 체리, 멜론, 사과, 커피, 초콜릿 등 충매 방식으로 생긴 열매를 사용해 만든 모든 식품이 식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식품은 전체 식품의 80%나 차지한다.

심지어는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도 못 먹게 될지 모른다. 이들 모두 충매 방식으로 번식한 풀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목화도 가루받이를 할 수 없는 만큼 면직물로 옷을 해 입지 못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의 식생활은 순식간에 채집경제 시대로 후퇴할지 모른다. 물론 인간이 꿀벌 대신 수작업으로 가루받이를 해 줄 수도 있다. 사실 꿀벌 대신 인간이 가루받이를 하는 것은 먼 미래의 악몽이 아니라 이미 중국이나 하와이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다. '꿀벌이 멸종하면 4년 내 인류도 멸종한다'는 격언은 속설과 달리 아인슈타인이 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한 말이건 간에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군집붕괴현상의 구체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밝힐 수는 없을지 몰라도 큰 틀에서 보면 그 해답과 인간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유한한 자연은 자연의 방식대로 이용해야 하며, 그 자연에서 무한한 이윤을 착취하는 짓을 중단하지 않으면 크나큰 화를 입는다는 것이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리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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