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의 지구물리학자인 샬럿 로위 박사에 따르면 아무런 화산에나 방사능 폐기물을 버릴 수는 없다.
방사능 폐기물을 버리려면 매우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시켜야만 한다는 것. 그 기준이란 바로 열이다. 화산 속의 마그마가 폐연료봉을 녹여 없앨 수 있어야 함은 물론 우라늄의 원자핵을 분해해 방사능까지 제거해버릴 수 있을 만큼 뜨거워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뜨거운 화산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로위 박사의 설명이다. 우라늄의 원자핵을 분해하려면 온도가 족히 수 만℃는 되어야 하는데, 지구에 있는 가장 뜨거운 화산의 마그마 온도는 1,30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 이런 마그마들은 대개 평평하고 완만한 경사를 보이는 방패 모양의 순상(楯狀)화산에서 많이 발견된다.
어쨌든 이 정도의 온도로는 핵연료 포장용기에 쓰이는 지르코늄조차 녹이지 못한다. 지르코늄의 녹는점이 1,852℃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다수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핵연료인 산화우라늄의 녹는점은 이보다도 높은 2,860℃ 이상이다. 게다가 순상화산의 마그마는 위로 솟구치려는 성질이 있어 폐연료봉을 지하 깊숙이 밀어 넣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결국 방사능 폐기물을 완벽히 처리할 수 있는 고열을 얻는 것은 원자폭탄과 같은 열핵반응을 일으키는 것 정도뿐이다. 물론 이는 핵폐기물 처리방법으로는 결코 좋지 않다. 특히 육상 화산의 60%는 여러 차례 분화가 되풀이 돼 용암류와 화산 쇄설물이 층을 이뤄 퇴적된 성층화산이다.
이 성층화산에 방사능 폐기물을 버렸다가는 폐기물이 화산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마그마의 상단부에 얹혀 있는 상태가 된다. 이때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분출되기라도 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방사능 폐기물을 잔뜩 머금은 용암이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용암도 매우 위험한 존재인데, 이 같은 용암의 위험성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용암이 식어 굳어버리면 그 지역은 최소한 수 십 년 동안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방사능 오염지대로 바뀐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보다 더 큰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화산이 폭발할 때는 용암 이외에도 화산재와 가스가 함께 분출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로위 박사는 "화산재와 가스는 종종 10㎞ 상공까지 치솟아 대기의 흐름을 타고 세계 각지로 퍼진다"며 "이들이 방사능을 내뿜는다면 지구촌 곳곳에서 재앙에 가까운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 자명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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