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시장이 애초에 노동이사제를 들고 나온 것은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반발을 달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영협의회를 만드는 것도 모자라 노조 대표 참여까지 당근으로 제시한 것이다. 박 시장이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기관” 운운하며 이런 노조편향적 제도를 여론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밀어붙이니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얘기가 나오게 마련이다. 게다가 서울시 산하기관들은 막대한 부채에도 성과급 잔치를 벌여 모럴해저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방만경영의 당사자들이 경영혁신에 앞장서고 임금삭감에 선선히 동의하기를 기대하기란 연목구어나 다름없는 일이다.
노동이사제는 1970년대 독일을 필두로 유럽 일부에서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노조 대표가 아니라 노조가 추천하는 외부 전문가들의 감시에 머무를 뿐이다. 그런데도 의사결정만 더디게 만들고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이처럼 효과도 불분명한 실험에 대해 경제계에서 “과도한 경영권 침해이자 시장경제의 뿌리를 흔든다”고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벌써 현대중공업 등 민간 부문에서도 서울시의 실험에 고무돼 사외이사 추천권을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니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벼랑에 몰린 우리 경제와 기업들로서는 노동이사제 같은 무모한 실험을 감내해낼 수 없다. 위헌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결국 공기업 혁신을 후퇴시키고 노조 천국을 부채질하는 후유증을 낳을 게 뻔하다. 이런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박 시장은 당장 위험한 실험을 중단해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