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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정말 한국을 버렸나…‘가쓰라-테프트 밀약’





구한말, 미국은 정녕 조선을 버렸을까. 그렇다고 교과서에서 짧게 배웠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密約)’. 미국과 일본이 각각 필리핀과 한국 지배를 서로 묵인하는 비밀조약을 맺었고, 한국의 국권 상실에 악재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국사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어서 그랬는지 일반인의 뇌리에 ‘미국과 일본 간 제국주의적 흥정’으로 각인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두고 지난 2005년 국회에서 설전이 벌어진 적이 있다.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이 “100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비롯된 한반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미국의 역사적 책임의식이 결핍되어 있다”고 주장하자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이 반박에 나섰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존재하지 않으며 일본이 조작한 역사를 갖고 미국이 (한반도) 식민지 과정에서 악역을 했다는 주장은 재고해야 한다”는 박 의원의 주장은 더욱 열띤 논란을 낳았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우선 과거 속으로 돌아가 보자.

1905년 7월29일, 도쿄. 이틀째 회의를 진행해온 가쓰라 다로(桂太郞) 일본 총리 겸 외상과 윌리엄 태프트 미국 육군성 장관이 약속을 주고 받았다. 합의 사항은 세 가지. ①가쓰라는 ‘일본 외교의 기본 원칙인 동아시아의 평화는 일본과 미국, 영국 간 협조가 있을 때 달성될 수 있다’고 말했고 태프트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②태프트는 ‘일본에 우호적이며 강력한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하는 게 일본에도 최선’이고 말했다. 이에 가쓰라는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공격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③가쓰라는 ‘러일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대한제국이었다. 일본은 대한제국이 일본과 다른 나라 사이의 전쟁을 또 다시 야기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대한제국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는 일본에게 매우 중대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에 태프트는 ‘일본이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을 갖는 게 동아시아의 안정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동의했다.

대한제국은 회담 내용을 전혀 몰랐다. 1905년 10월 ‘고쿠민(國民)’이라는 일본 언론을 통해 일부 내용이 흘러나왔지만 전체 내용은 1924년에서야 미국 외교사학자 타일러 데넷에 의해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대일 비밀조약(Theodore Roosevelt’s Secret Pact with Japan)’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데넷은 여기에서 ‘합의된 비망록(Agreed memorandum)’의 ‘agreed’를 ‘agreement’로 봤다. ‘합의 메모’를 ‘협약’으로 간주한 셈이다. 1959년 미국 역사학자 레이먼드 에스더스는 ‘가쓰라-태프트 협정, 진실인가, 신화인가’라는 논문에서 데넷의 견해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어떤 견해가 맞을까.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밀약이던 구두합의든 가쓰라와 태프트의 만남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다. 일본은 밀약이 오간 뒤 100여일이 지나 을사늑약을 체결해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삼았다. 미국은 늑약체결 후 가장 먼저 외교공관을 철수시켰다. 밀약의 당사자인 태프트가 미국의 27대 대통령, 가쓰라가 일본 총리(2기 내각)로 재임하던 1910년 조선은 결국 일본에 병탄되고 말았다.

결과 뿐 아니다. 경과 역시 역사에 분명하게 남아 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이후 미국과 일본은 4차례 협정을 맺어 일본의 한국 지배를 몇 번씩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미국의 일본인 이민 제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한 신사협정(1908.2)에서도 미국은 일본의 한국 보호를 인정했다. 신사협정 3개월 뒤에는 미일중재조약에서 조미통상수호조약(1882)상 미국의 중재재판권을 포기하고, 곧이어 미일 상표협약에서는 한국 내 미국인에 대한 사법권의 일부를 포기, 일본에 내줬다. 루트-다카히라 협정(1908.11)에서는 한국의 영토주권 승인권 포기 조항까지 넣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둘러싼 정황은 더욱 비참하다. 미국은 한국을 국제 분쟁을 일으키는 말썽의 원인 제공자로 여기고 일본과 병합을 당연한 수순으로 간주한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태프트를 일본에 보냈던 테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인식을 살펴보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1905년 언론인 G.케난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나는 당신이 잡지에 기고한 기사가 아주 마음에 든다’. 케난이 ‘아웃 룩(Out look)’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내용. ‘한국인은 본래 일본인 또는 중국인과 같은 수준에서 사물을 파악할 능력이 없다. 만약 사물에 제대로 보는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패했기 때문에 자력으로 훌륭한 사회를 만들고 지켜나갈 수 없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인종적 결함과 낡고 뒤떨어진 정치·사회제도 탓에 외부로부터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는 후진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친일(親日)·혐한(嫌韓) 인식에 대한 자료는 숱하게 많다. ‘한국이란 극동의 모든 나라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가장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의 나라이며, 한국 민족은 가장 문명이 뒤진 미개한 인종이다. 한국인은 자치에 전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반면 일본은 입헌정치의 나라이며 일본 민중은 지성과 활력, 활기에 넘치는 문명 국민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데도 대한제국과 고종은 미국을 끝까지 믿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의 ‘불공경모(不公輕侮)’ 문구-‘조선과 미국은 제3국으로부터 부당하게 업신여김을 당하면 서로 문제 해결을 알선하며 돕는다’는 뜻‘-를 외세침략을 막아줄 바람막이로 여기고 미국에 매달렸다. 최정수 고려대 동아시아문화교류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연구논문 ‘특사 태프트의 제2차 대일방문과 미일조약체제, 1907~1908’에 따르면 미국도 이 조약을 걸림돌로 여겼다.

태프트가 조약을 맺지 않고 합의문 형식으로 가쓰라와 밀약을 맺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미수호통상조약에 명시된 문구가 걸렸고, 의회의 비준을 얻어야 하는 정식 조약보다 비밀 각서가 루스벨트 외교정책의 특징이기도 했다. 루스벨트가 조약을 의식했다는 방증이 한일병탄 이후인 1914년 ‘세계 전쟁, 그 비극과 교훈’이라는 기고문에 일부나마 나온다.

‘한국은 일본의 것이다. 한국의 독립은 확실히 조약(조미수호통상조약)에 의해 엄숙히 약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스스로가 그 조약을 이행하기에는 무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다른 나라가 자기를 희생해서, 한국 자신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한국을 위해서 감히 행동할 것이라고는 아무리 해도 생각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또한 그 조약(조미수호통상조약)은 한국이 훌륭히 자치할 수 있다고 하는 잘못된 전제에 입각한 것이었다.’

루스벨트의 견해는 미국인 일부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알렌 공사같이 한국을 변호한 미국인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일본을 지지했다. ‘일본은 진보와 문명을 위한 전사이며 중국의 문호개방을 옹호해서 미국의 전쟁을 대신 해주고 있다’고 믿는 자가 더 많았다. 당시의 한국인 일부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국인 최초의 미국 유학생인 서재필은 1904년 이승만에게 이렇게 말했다.

‘현재까지의 일본은 정당했었고 모든 문화인들이 옹호해야 될 원리원칙을 위해 싸우고 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정의와 문명을 위해 싸우는 나라에게 신의 비호가 있기를 빈다.…(중략)… 일본 또는 타국은 만약 한국이 스스로 도우면서 타국의 원조를 바라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는 한 한국을 도와줄 턱이 없다. 만약 한국이 이제부터도 역시 어린애와 같이 행동한다면 외국의 속국화되는 것은 확실하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111주년을 맞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력은 구한말과 비할 바가 아니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당시와 비슷한 상황은 무엇이고, 다른 것은 또 무엇인가 따져봐야 할 때다. 한 가지 만은 분명하다. 힘과 주권을 향한 의지가 생존과 발전의 척도라는 사실. 미국과 일본이 다시금 밀월 관계라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신 뿐 아니라 미국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 같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과 싸우면서도 일종의 경외심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죽더라도 끝까지 싸우고 포로로 잡히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일본을 속으로 두렵게 여겼다. 우리에게 그럴 힘과 의지가 있을까. ‘사물을 제대로 보는 자’는 얼마나 되고 부패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나. 미국은 무조건 우리 편이라는 인식 역시 111년 전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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