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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못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살고 싶어서…12인의 ‘탈조선’ 성공기

잡코리아가 2030세대 2,877명을 대상으로 9월19일·20일 설문조사한 결과 ‘기회만 된다면 해외취업 하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이 79.1%에 달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서울의 한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하던 전은미(27)씨는 다음 달 중순 싱가포르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전씨가 해외취업을 선택한 이유는 ‘삶다운 삶’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 전씨는 “직장인은 본인의 시간을 팔고 기업은 그 시간을 산다. 일종의 거래관계다. 그런데 일이 끝나도 퇴근하지 못하는 기업문화는 한국의 정서상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며 일을 마친 후에도 상사의 퇴근을 기다려야 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좋은 대학·안정적인 직장·제 때 하는 결혼 등 정해진 공식을 따르지 않으면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만다”며 이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 ‘나답게 살고 싶어서’ 해외를 선택했다고 털어놨다.

‘탈조선’을 꿈꾸는 2030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청년들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며 도망쳐야 할 곳으로 규정짓는 가장 큰 이유는 극심한 경쟁과 취업난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도 박차고 한국을 떠나는 청년들 역시 적지 않다. 이들은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살고 싶어서 대한민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상명하복의 군대식 기업문화·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뿐 아니라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늘 누군가와 비교하는 데 익숙해진 사회적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다는 슬픈 고백이다.

그러나 해외로 간다고 장밋빛 인생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 없이 도망치듯 한국을 떠난다면 오히려 불행해질 확률만 높아진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해외취업의 조건은 무엇일까. 서울경제는 지난 19일~25일, 해외에서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응답한 20대~50대 12명을 직접 만나거나 이메일·화상통화를 활용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싱가포르·뉴질랜드·오스트리아·러시아·미국 등에서 취업했거나 이민 후 직장을 구했다.

내가 한국을 떠난 이유…‘버티는 삶’을 원하지 않아서

이들이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는 ‘버티는 삶’이 싫어서다. 업무시간을 꽉 채우고도 상사 눈치 보느라 늦게까지 회사에 매이고, 군대식 조직문화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는 분위기가 염증이 난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헤드헌터로 일하고 있는 권우현(32)씨는 “반짝반짝 빛나던 선배가 대기업에 취업한지 몇 개월 만에 짜인 틀에 본인을 맞추고 있더라”며 “아침 7시부터 밤 11시라는 살인적 업무강도에서 강점이나 개성이 발현되는 건 불가능한 구조 아니냐”고 말했다. 권씨는 ‘몇 년 버티면 대리, 또 몇 년 지나면 과장·차장·부장이 된다’며 승진계획을 나열하는 선배의 모습에 “당장 해외로 나갈 준비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고 회상했다.

글로벌 자동차 그룹의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김지은(35·가명)씨도 야근을 당연하게 여기는 회사를 뛰쳐나온 경우다. 김씨는 “정시퇴근하려고 하니 부장이 일하고 싶어 줄 선 애들이 차고 넘친다며 혀를 차더라”며 “취업 사실만으로 감사하다고 여기라는 건 폭력 아니냐”고 토로했다. 직장인으로서 당연한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탈조선’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셈이다.

싱가포르가 2년 연속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 1위로 꼽혔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실시한 ‘2016 해외거주자 의식 조사(Expat Explorer survey)’에서 싱가포르는 금융 소득과 취업기회, 삶의 질, 안전성, 가족 친화적 환경 등 주요 지표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해외취업 국가 선택 기준은 언어·전문성·복지혜택 순

그러나 한국이 싫다고 무작정 떠날 수는 없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떠한 경험도 불가능하기 때문. 인터뷰에 응한 12명 모두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에 맞춰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기업의 경우 현지어 구사 능력이 요구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특히 사회의 첫 발을 해외에서 내딛길 원한다면 영어만 유창하게 해도 지원할 수 있는 기업의 범위가 넓다. 5년째 싱가포르에 거주 중인 정호연(30·가명)씨는 “영어는 필수”라며 “일본어·중국어 등 영어 외에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건 추가적인 장점”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중인 오나은(31)씨도 “미국기업은 우선 의사소통만 되면 그 사람의 가능성을 보는 데 집중한다”며 영어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경력직으로 이직하는 경우라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직무를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미국의 게임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최은수(29)씨는 ‘키워드’에 맞춰 적극적으로 회사를 찾은 게 주효했다고 말한다. 최씨가 선택한 키워드는 게임·엔지니어·서비스기획이다. 그는 “관련성이 있는 업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엔지니어로 지원하면서 사내 TF에서 서비스 기획한 경험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근무조건도 빼놓을 수 없는 조건 중 하나다. 자유로운 분위기·능력 중심 연봉제 못잖게 중요한 것이 인종차별 여부다. 그런 면에서 싱가포르는 비교적 쉽게 정착할 수 있는 나라로 꼽힌다. 싱가포르는 영어가 상용되고 글로벌 기업이 많아 서구권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에도 동양인이 주류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올 4월부터 호주뉴질랜드은행(ANZ Bank) 싱가포르 법인에서 근무중인 하철민(56) 전무는 “싱가포르에서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비자 발급이 용이한가도 무시할 수 없다. 8월부터 싱가포르 소재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김태현(31)씨는 “(싱가포르) 취업비자는 기본 2년이고 연장도 용이한 편”이라며 “비자의 문턱에 걸려 취업이 좌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자 발급이 비교적 쉬운 국가에서 일을 시작하는 게 유리하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최신 정보를 모으기 위해 인터넷을 100% 활용할 것도 당부했다. 3년간 싱가포르에서 거주하다 최근 뉴질랜드에 정착한 김성국(30)씨는 “구글에 모든 정보가 다 있다. 단지 찾는 방법을 몰라서 정보를 놓쳤을 수 있다”며 반드시 영어로 검색하라고 덧붙였다.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구체적인 목표를 수립할 수 있기 때문. 권우현(32)씨도 “인터넷이 발달해 한국에서도 외국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한국어로는 중요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 해외취업에 성공한 12인의 이야기는 관련 기사 [나의 해외취업 성공기]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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