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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 침략전쟁 덕에…'노벨과학상 단골' 日 불편한 진실

■고토 히데키 지음, 부키 펴냄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가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일본 과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25명으로, 과학분야에선 22명이나 된다(그리고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 이 중에서 교토대학 출신이 6명으로 가장 많다(도쿄대학은 5명). 인재가 몰리는 것이나 물적 지원에서는 지방인 교토가 수도 도쿄를 당해낼 수 없는 데도 그렇다. 일본 과학계에서는 ‘교토 출신은 노벨상을 많이 받는데 도쿄는 왜 안되나’는 물음이 여전히 화두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런 질문이 가능하겠다. 일본은 노벨상은 받는 데 왜 우리는 안되나.

새 책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는 1854년 ‘개국’ 이후 160여년간 노벨상 수상자를 테마로 일본 근현대 과학을 정리했다. 책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일본 근대화 과정의 영향이다. 강제에 의해 문호를 개방한 일본은 필사적으로 서양 따라잡기에 나선다. 그리고 서양세력을 흉내 내 동아시아 침략전쟁을 벌인다. 일본의 과학은 이를 통해 발전했다. “동양에 없는 것은 두 가지다. 유형으로는 수리학, 무형으로는 독립심이다.” 개화기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말이다. 일본은 서양에 유학생을 보내 근대 학문을 수용했는데 그들의 전공은 주로 의학과 화학이었다.



후쿠자와가 기틀을 닦아놓은 과학은 일본군의 침략전쟁에 무기를 대면서 힘을 키웠다. 왁스를 섞어 폭발력을 대폭 높인 ‘시모세 화약’은 러일전쟁 때 대마도 해전에서 효과를 봤다. 생리학 분야에서는 천인공노할 731부대의 악행을 빼놓을 수 없다. 연구자 1,000여명이 세균전과 인체실험에 투입됐다. 이시카와 다치오마루라는 세균학자는 전쟁 직후 표본을 몰래 숨겨 귀국한 뒤 연구에 쓸 정도로 집요한 냉혈한이었다. 교토의 과학적 성과는 이런 근대화의 열정과 악행이 뒤섞인 축적이었다.

또한 근대화 초기 과학자들은 규제가 심한 도쿄를 버리고 교토와 오사카에 모여들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따라 대학들이 성과를 냈고 이런 추세는 지금도 이어진다. 어쨌거나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 과학발전이 연결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이다. 1만8,000원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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