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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익숙하지만 낯선 건물 ... '종로타워'

지하철 1호선 종각역과 연결돼 있는 ‘종로타워’는 준공 당시만 하더라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같이 불시착한 우주선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지금은 종로의 터줏대감이라 불릴 정도로 사람들에게 익숙한 건물이 됐다.




‘종로타워’. 한 번이라도 종각을 스쳐 지나간 적이 있는 사람들은 주변 다른 건물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형상의 이 건축물을 잊지 못할 것이다. 1990년대 말 준공 당시만 하더라도 낯설게만 느껴졌던 종로타워도 2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종로의 터줏대감이 됐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1호선 종각역과 연결돼 있다 보니 사람들에게 익숙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입에 오르내리기 때문인지 그 과정에서 종로타워에 대한 잘못된 내용들이 종종 전달되기도 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종로타워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억울한(?) 오해를 많이 사는 건축물이다. 그 오해를 하나씩 풀어가다 보면 종로타워가 왜 지금 그 자리에 그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지를 알 수 있다.



● 왜 커다란 구멍이 나 있을까

법규 - 상징성 사이서 30m 공간 비워 설계

“군사목적·청와대 관련” 낭설 돌기도



건물 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 종로타워의 기괴한 형상은 많은 오해와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종로타워는 지상 24층과 레스토랑 탑클라우드가 있는 33층 사이에 약 30m의 공간이 비어 있다. 일각에서는 이 구멍을 두고 군사적 목적이라든지 청와대와 관련 있다든지 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떠돈다. 하지만 당시 종로타워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삼성생명 관계자들과 설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종로타워에 나 있는 커다란 구멍은 군사적 목적도 아니고 청와대와 관련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비어 있는 공간은 종로 한복판에 상징성 있는 랜드마크 빌딩을 짓고자 했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종로타워를 설계한 라파엘 비뇰리와 함께 설계에 참여한 삼우종합건축사무소에서 근무했던 박호영 정일아키포럼 대표는 “애초 비뇰리가 설계한 종로타워의 높이는 지금보다 1.8배 정도 높았지만 한국 법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며 “높이를 낮추는 대신 상징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전 삼성생명 관계자도 “허가받은 용적률을 가지고는 마음에 드는 설계가 나오지 않아 지금과 같은 형태로 설계를 했다”고 말했다.

형태적으로 보면 종로타워는 네모 반듯하게 얌전한 모습을 하고 있는 주변 오피스 빌딩과는 달리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박 대표는 “주재료로 쓰인 철골·유리와 함께 힘 있게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형상이 어우러져 굉장히 다이내믹한 인상을 주는 건축물”이라며 “당시는 국운이 번창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반영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건축물의 최고 높이도 133.5m로 서울 종로구에서 SK서린빌딩 다음으로 높다.

종로타워 옥상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종로타워 맞은편의 청진동 일대도 재개발로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 불편한 오피스 빌딩이 된 사연

IMF에 백화점서 업무시설로 용도변경

지금도 판매시설 고려한 흔적 곳곳에





종로타워의 주 용도는 업무 및 판매시설이다. 하지만 종로타워는 현재 오피스 빌딩으로서는 거의 ‘무명(無名)’에 가깝다. 대부분의 프라임 오피스 빌딩들의 경우 주요 임차인들이 존재감을 나타내지만 종로타워는 뚜렷하게 떠오르는 임차인이 없다. 준공 후 바로 국세청이 몇 년간 사용하면서 국세청 건물로 불리기도 했으나 그 이후에는 눈에 띄는 임차인을 들이지 못했다. 오피스 용도로는 종로타워가 상당히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최초 종로타워 개발을 계획할 당시 용도는 판매시설이었다. 삼성생명은 애초 1980년대 후반 한보그룹으로부터 종로타워 부지를 사들일 때부터 판매시설을 계획했다. 원래 종로타워가 세워진 터에 1931년 최초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화신백화점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조 공사까지 끝마친 상태에서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업무시설로 용도를 변경했다. 백화점으로는 시장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생명에서 근무하며 종로타워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골조가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용도변경이 이뤄지다 보니 엘리베이터 위치 등과 같은 것들이 지금도 판매시설에 맞게 설계된 흔적이 남아 있다”며 “그러다 보니 건물의 기능과 형태가 맞지 않는 건축물이라는 비판도 나온다”고 말했다.

올 초 싱가포르계 투자자인 알파인베스트먼트에 매각되기 전까지는 빌딩 소유가 구분돼 있어 관리가 잘되지 않은 점도 오피스 빌딩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었다. 종로타워는 삼성생명과 영보합명주식회사가 구분 소유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전 삼성생명 관계자는 “토지를 매입할 당시 영보합명 소유 땅까지 같이 매입할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협상이 되지 않아 결국 무산됐다”며 “구분 소유 빌딩이다 보니 재투자나 시설 개선에 어려움이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

종로타워의 상징인 ‘탑클라우드’.


●‘밀레니엄타워’가 될 뻔한 사연

‘새로운 1000년’ 눈 앞에 둔 1999년 준공

‘밀레니엄 타워’ 이름 붙이자는 의견도

겉으로 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종로타워지만 여기에는 많은 삼성맨들의 슬픔과 기쁨이 녹아 있다. 부동산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이건희 회장은 유독 종로타워를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삼성생명 관계자는 “이 회장은 모든 부동산에 애착이 강했지만 종로타워의 경우 지하 1~2층 상업시설 비중이 크고 종각역과 연결돼 있어 이를 활성화시킬 방안에 대해 지시를 많이 내렸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 회장의 관심이 크다 보니 피곤한 점도 있었다. 특히 종로타워는 착공 후에도 영보합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사업 진행이 상당이 느렸다. 이 과정에서 많은 담당자들이 교체되거나 눈물을 흘리곤 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종로타워의 이름이 애초에 ‘밀레니엄타워’가 될 뻔했다는 점이다. 종로타워가 준공된 시기는 1999년. 2000년을 눈앞에 둔 때였다. 이 때문에 당시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이를 기념해 밀레니엄타워로 이름을 붙이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밀레니엄이라는 이슈가 일시적이고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결국 종로타워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 삼성 관계자는 “삼성은 워낙 건물이 많다 보니 내부적으로 지역명을 딴 이름을 짓는다는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며 “일정 규모 이상의 큰 건물에는 지역명과 함께 ‘타워’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렇지 않은 나머지 건물에는 ‘빌딩’을 쓴다”고 설명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종각역과 연결돼 있는 종로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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