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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통상임금 법제화 서둘러 사회갈등 줄여라

과거 실적으로 경영상태 판단

신의칙 자의적 배제 혼란 키워

근로기준법 기준 명확히 해야

기아자동차 노조가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31일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회사의 경영상태가 나쁘지 않아 신의성실의 원칙에도 위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기아차는 4,223억원의 미지급 임금을 포함해 최소 1조원대의 부담을 떠안게 됐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소급분 지급 의무가 걸린 신의칙의 수용 여부였다. 노조 측은 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정기성·일률성·고정성 원칙에 따라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회사 측은 노사 합의와 경영난을 이유로 신의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반박해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기아차가 2008년 이후 수익을 냈다며 경영위협이 크다는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노사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고 합의했다면 이를 존중하는 것이 맞다. 수십 년간 이어져온 노사 관행을 법원이 명백한 이유도 없이 뒤집었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재판부가 매년 성과급 지급을 경영 호조의 근거로 제시한 것도 귀족노조의 실상을 간과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게다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과 미국의 통상 압력 등에 따라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중대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은 모순적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가 자의적인 신의칙 적용과 과거 실적만으로 경영상태를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원이 산업계 전반에 미칠 파장을 세심하게 따져봤는지도 의문이다. 기아차가 미지급 법정수당을 지급하게 되면 당장 적자로 돌아서면서 수천 곳의 협력업체는 물론 자동차 업계 전반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경제단체들은 섣부른 통상임금 판결이 투자 위축과 일자리 감소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법원에 통상임금과 관련한 소송만 200여건이 진행되고 있어 추가 부담이 산업계 전체로는 38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 있다. 가뜩이나 경영난에 시달리는 기업들로서는 국내에서 계속 공장을 돌려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항소심에서는 이런 사정들이 감안돼야 할 것이다.

차제에 통상임금을 둘러싼 갈등을 원천적으로 줄이기 위한 장치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갑을오토텍의 통상임금에 대해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하급심의 판결이 엇갈리는 것은 근로기준법에 통상임금과 관련한 규정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결국 각 기업은 임단협으로 이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임단협 내용이 기업마다 다르다 보니 혼란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임단협을 통해 ‘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명시적인 규정을 두지 않은 기업은 노사 간 해석을 두고 엇갈릴 수밖에 없다. 너도나도 법원으로 달려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기아차의 경우만 하더라도 ‘상여금 지급세칙’이 없이 묵시적인 합의를 통해 해결을 하다 보니 애매한 상황이 생긴 것이다.



이 같은 혼란을 근본적으로 줄이려면 근로기준법에 통상임금의 정의와 기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입법작업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보면 통상임금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려는 경향이 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는 통상임금을 ‘명칭에 관계없이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지급하기로 한 임금으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한 임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법원이 인정한 세 가지 요건 가운데 고정성을 아예 빼버린 것이다. 이는 사실상 모든 임금을 통상임금에 넣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법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식으로 범위가 확대되면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오히려 부채질하는 역효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그러잖아도 경쟁력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우리 주력 기업들은 새 정부 들어 최저임금·법인세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메가톤급 충격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런 때에 기업들이 통상임금 부담까지 추가로 떠안게 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기업들이 통상임금 부담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나설 수 있도록 입법작업에 신중을 기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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