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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정치] 北김여정, 1120년만에 역대 4번째 '여왕' 될까

日 등 외신들 '김씨왕조' 후계자로 잇딴 주목

이미 '2인자'... 김정은 신변문제시 서열 '0순위'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달리 일찌감치 존재감

집권하면 신라 여왕 3명 이후 첫 세습 女지도자

진성여왕 땐 후삼국 시작... 39년뒤 나라 멸망

'섭정' 가능성도... 김평일·김정철 등은 변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연합뉴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그의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김정은이 잠행하기 전부터 이미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북한 내 ‘권력 2인자’라는 평을 들었던 그는 이제 최고지도자 권한대행 설의 주인공까지 됐다. 북한이 김씨 왕조 성격의 군주제적 국가임을 감안할 때 김여정이 언제든 급변 사태로 권력을 잡을 경우 그는 한반도 역사에서 신라 진성여왕(재위 887~897년) 이후 1,120여 년 만에 등극하는 역대 네 번째 여왕과 마찬가지 존재가 될 전망이다. 다만 아직 김정은의 신변과 후계구도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고 북한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나라라는 점에서 이는 아직 여러 가정 중 하나로만 남아 있다.

조선중앙TV가 지난해 10월 김정은이 김여정(왼쪽), 조용원(오른쪽) 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 말을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보도한 장면. /연합뉴스


최고지도자 권한대행說 주인공 된 김여정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2일 한미일 협의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이 사망 등을 이유로 통치를 할 수 없게 될 경우 ‘권한을 모두 김여정에게 집중한다’는 내부 결정을 북한이 지난해 말 내렸다’고 보도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회 이후 김여정 명의로 된 지시문이 당과 군에 많이 내려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김여정을 중심으로 한 후계구도 가능성을 제시한 건 요미우리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유력 매체인 가디언과 미국의 블룸버그통신·뉴스위크·뉴욕포스트 등도 긴급사태 시 김여정을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다뤘다. 증권가 안팎에서도 김정은의 유고 시 그가 명목상 지도자로 나설 수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이보다 더 일찌감치 유통됐다.

세계 각국이 김정은 부재 시 김여정의 최고지도자 등극 가능성을 높게 본 이유는 역대 ‘김일성 일족’ 가운데서도 김여정의 최근 행보가 워낙 이례적이고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김여정은 특히 지난 3월 돌연 자신의 명의로 김정은이나 할 법한 대남·대미 담화를 직접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어 김정은이 자취를 감추기 하루 전인 이달 11일 정치국 후보위원에 복귀하면서 명실상부한 권력 2인자로 평가받았다. 12일에는 김정은의 마지막 군사 일정인 항공군 추격습격기연대 시찰에도 동행했다.

김여정은 지난 2017년 정치국 후보위원에 진입했다가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직후 해임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다 지난해 말 대규모 인사 개편이 이뤄진 당 전원회의 이후부터 입지를 다시 끌어올렸다. 당시 김여정은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에서 ‘당 제1부부장’으로 올라섰는데 노동당의 가장 핵심부서인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전보된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회의에서 보직 해임된 리만건 전 조직지도부장의 역할까지 맡고 있을 것이란 해석도 유력하게 제기됐다. 요미우리가 김여정의 최고지도자 권한대행 준비 시점으로 본 것도 바로 이쯤이었다.

실세 권력으로 본격 등장하기 전의 김여정. /연합뉴스


‘정신 모자라는 아이’에서 단숨에 ‘권력 2인자’까지

김정은이 최고지도자에 등극한 직후만 해도 국내에서는 ‘김정은의 여동생은 정신이 좀 모자란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김여정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김정은이 참가한 공식 행사에서 천방지축의 모습을 보이는데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모습이 잇따라 목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여정은 이후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보다도 더 일찍, 더 강력하게 권력 중심부로 편입됐다.

1988년생으로 올해 32살인 김여정은 어린 시절 둘째 오빠인 김정은과 스위스에서 함께 유학을 하는 등 친분이 꽤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개인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에 따르면 김정일은 생전에 김여정을 ‘여정 공주’라고 부르며 매우 아꼈다.

김여정은 2014년 3월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김정은의 수행자로 나서며 공식석상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2018년 2월9일 김정은 전용기를 타고 방남하면서 존재감을 만방에 알렸다. 김일성 일족 가운데 한국 땅을 밟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김여정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친서를 직접 전달하고 방북을 요청하기도 했다. 김여정의 북한 내 위상이 ‘김정은의 동생’ 그 이상임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김여정은 특히 그해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을 밀착 수행하며 비서실장 노릇까지 했다. 이어진 북미정상회담 때는 김정은과 싱가포르에 동행했고 같은 해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아예 행사장을 본인이 진두지휘했다. 이 시점에서 벌써 김여정보다 돋보이는 김정은의 측근은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3대 세습이 확정된 2010년 10월 김정일과 김정은. /연합뉴스


일찍부터 드러낸 존재감... 선대와는 다른 권력 행보

김여정은 무엇보다 최고지도자의 나이가 한창인 시절부터 2인자로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과거 다른 김씨 일족들과는 확연히 다른 권력 행보를 보였다. 이미 자녀가 3명이나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이 고작 30대에 직계비속도 아닌 형제를 2인자처럼 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상황을 염두에 둔 판단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은 2010년과 2013년·2017년에 각각 자녀를 낳았는데 둘째가 딸이라는 것 외에 다른 자녀의 성별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경우 아무리 혈족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60대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미리 2인자를 점지하는 데 인색한 태도를 보였다. 북한 체제 특성상 현 지도자가 아주 고령이 됐거나 건강 상태가 나빠지기 전까지 후계구도를 논하는 것 자체가 불경에 가까웠다.



김일성은 68세였던 1980년 6차 노동당 당 대회에서 김정일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다. 김정일은 66세였던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비로소 김정은에 대한 권력승계 준비작업을 본격화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공식 후계자로 지목하기 전까지 북한 세습체계가 확립되지 않아 2인자 지위를 확신하지 못했고, 김정은은 아예 북한 주민들에게조차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이에 따라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 내에서 김여정의 위상이 이미 직책을 따질 이유가 없을 만큼 높은 수준까지 오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정은의 그 어떤 측근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체 불가한 후광과 권한을 쥐었을 것이란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일각에는 선전선동부, 조직지도부 등에서 경력을 쌓는 과정이 아버지 김정일의 후계자 시절과 닮았다는 평도 있다. 이번에 김정은 신변에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최종 판명되더라도 김여정의 권력 승계 서열은 당분간 ‘0순위’로 거론될 공산이 크다.

강원도를 방문한 김여정. /서울경제DB


집권 시 신라시대 이후 사실상 첫 여왕이나 마찬가지

나아가 만약 김정은 신변에 실제 이상이 발생해 김여정이 권력을 쥘 경우 그가 사실상 여왕에 준하는 권위를 누릴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국가 가운데 기록에 남은 여왕은 오직 신라에만 3명 있었다. 첫 여왕은 선덕여왕(재위 632~647년)이었으며 그 뒤를 진덕여왕(재위 647~654년)이 이었다. 진성여왕은 진덕여왕 이후 233년이 지나 즉위했다.

여성 지도자 전체로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들 다음이지만 박 전 대통령은 엄연히 선거를 통해 민주 사회에서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 원수였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를 했어도 권력을 그대로 ‘세습’하지는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다시 들어간 건 아버지가 죽은 지 34년 만이었다. 종신직이자 신적 존재인 봉건시대의 제왕이나 북한 최고지도자와는 즉위 명분과 권한의 범주가 전혀 달랐다.

신라의 역대 여왕들 중에서도 마지막인 진성여왕은 헌강왕·정강왕의 여동생으로 김여정과 비슷하게 남매 계승을 받았다. 당시 기준으로 고령인 40대 후반~50대에 즉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선덕여왕, 진덕여왕과 달리 20세 전후의 젊은 나이에 즉위했다는 점도 김여정이 겹치는 부분이다. 진성여왕의 재위 기간 신라는 국운이 다해 후삼국 시대가 본격화됐고 그의 사후 39년 만에 신라는 천년 사직을 끝냈다.

김여정의 역할이 여왕이 아닌 ‘섭정’에 그칠 수도 있다. 섭정은 군주가 위중하거나 너무 어려 직접 통치하기 힘들 때 군주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자가 권한을 대행하는 형태의 정치체제다. 역사적으로는 고려 목종 때 천추태후,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 등이 섭정을 한 대표 여성 지도자로 이름을 남겼다. 김정은의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만 김여정이 명목상 지도자로 공백을 메우는 시나리오다.

김여정 이후의 후계 구도가 김정은이 아닌 김여정의 자녀로 이어질 경우 지도자의 성씨와 일족 자체가 바뀌는 사실상의 ‘역성혁명’이 돼버린다. 신라 진성여왕은 조카인 효공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죽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김여정. /연합뉴스


급변사태에도 김정철·김평일 등 변수는 많아

다만 김여정이 현 시점에서 후계구도에 확실히 편입됐는지에 대해선 반론도 만만찮다. 그가 급변사태 때 곧바로 권력의 최정점에 설 정도로 북한 군부와 당의 확고한 지지를 받는지 여부부터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일, 김정은 만큼 확실한 승계 과정을 거치지 않아 고모인 김경희 등의 후방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이와 경력이 부족한 여성이라는 점도 가부장적인 북한 체제에서는 큰 핸디캡이다.

큰 오빠인 김정철, 숙부인 김평일, 리설주와 김정은 자녀 등의 존재도 변수다. 김평일과 김일성의 사위인 김광섭은 지난해 11월 북한에 동반 소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맡았던 주오스트리아 대사와 주체코 대사의 후임은 지난 3월 공식적으로 정해졌다. 김광섭은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경진의 남편이다.

탈북민 출신인 태구민(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인은 지난 23일 KBS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현 체제를) 받들고 있는 세력은 다 60~70대로 그들의 눈에 김여정은 완전히 애송이”라며 “김여정 체제가 김정은 체제처럼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려 “다른 하나의 옵션으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김평일이란 존재”라며 김여정보다는 김평일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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