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을 포함해 중국과 일본·몽골·한국이 함께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한반도에 남아 있는 비극적 상황을 끝낼 때가 됐다”면서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다시 거론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미 관계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남북 관계도 경색된 상황에서 ‘종전선언’이라는 화두를 다시 던진 것을 두고 논란도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 비핵화의 문을 열자고 주장했는데 이는 미국 등의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10번째 연설자로 나서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보건 협력체를 제안하면서 “여러 나라가 함께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하는 협력체는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다자적 협력으로 안보를 보장받는 토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는 대신 사전 녹화된 영상을 통해 연설했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동북아 보건 협력체’는 코로나19 위기 속 보건·방역 협력을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이고 이를 통해 안전한 한반도를 구현하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기존의 한중일 방역 협력 구상에 북한과 몽골이 더해진 개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총회에서는 ‘비무장지대(DMZ) 국제평화지대화’를 제안했으나 북한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임기가 20개월가량 남은 가운데 이번 제안은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던지는 마지막 대북정책 구상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방역과 보건 협력은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과정에서도 대화와 협력의 단초가 될 것”이라며 코로나19를 계기로 북한이 국제협력의 문을 열 것을 호소했다. 또 “한 국가의 평화,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국경을 넘는 협력이 필요하며 다자적인 안전보장 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라며 유엔과 국제사회의 협력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종전선언’을 다시 끄집어냈다. 문 대통령은 2년 전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호소했으나 지난해 북미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종전선언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고 나아가 세계질서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그 시작은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또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도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며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언급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상징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임기 말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평가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선(先) 비핵화, 후(後) 종전선언’이 아닌 ‘북한과의 다자 협력 관점’에서 종전선언을 주장하면서 미국 등 동맹국과 대북 인식이 동떨어졌다는 비판 제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과 교수는 “종전선언을 해야지 비핵화의 문을 연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이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느냐는 부분에서 회의적”이라면서 “북미 사이에서 틈바구니를 찾으려는 문 대통령의 안타까움은 이해되지만 현 상황에서는 현실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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